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명예교수/논설위원

일본 내에서 제주 4·3을 논의할 때 자주 제기되는 쟁점의 하나는 대규모 희생에 대한 일본의 책임 문제이다. 미군정의 제주도민 탄압과 남북분단 과정에서 미국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일본이 4·3 학살의 직접적 가해자는 아니라는 점도 사실로 지적된다. 그러나 여러 연구나 조사가 밝혀온 바와 같이, ‘초토화 작전’으로 불릴 만큼 잔혹했던 주민 학살은 일제 식민지 지배가 남긴 인맥과 제도적 유산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4·3 초기 강경 진압 작전을 주도하고 최근 국가유공자 지정 논란을 일으킨 박진경은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징집돼 일본 육군 공병학교를 졸업하고 제주에서 일본군 제38군 소속으로 복무한 경력을 지닌다. 중산간 지역 통행 금지와 초토화 작전을 지휘한 송요찬 역시 특별지원병 출신으로 육군 조장曹長(상사)까지 진급했다. 1949년 초 토벌작전을 지휘한 함병선 또한 1938년 1기 특별지원병 출신으로 조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계엄령, 국가보안법, 예비검속 등 대량학살의 법적 근거가 된 제도 역시 일제강점기 때 구축된 억압 체제를 계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러한 식민지 지배 구조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시각이 제기되면서 이목을 끈다. 다카무라 료헤이 아키타대 교수의 신간 『흙과 돌의 기억―제주도 4·3 사건과 사람들의 생활사(土と石の記憶 済州島四·三事件と人びとの日常生活史)』는 초토화 작전기 중산간 통행금지령, 강제 이주, 돌담으로 둘러싼 집단부락 조성, 민보단 조직 등이 만주국 군경의 ‘공비 토벌’을 위해 운영된 주민 관리·감시 시스템 ‘보갑제(保甲制)’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보갑제는 중국 송나라에서 시작된, 주민에게 치안 유지의 연대 책임을 지우는 통제 제도로, 만주국에서는 ‘잠행보갑법(暫行保甲法)’으로 시행되었다. 4·3 당시 경찰 간부로 초토화 작전의 실질적 설계자로 지목되는 홍순봉과 고병억이 각각 만주 경찰과 만주국 헌병 출신이었다는 점도 이러한 연속성을 뒷받침한다.
만주국 육군학교를 비롯한 만주 국군 출신 인맥이 미군정기의 군사영어학교, 국방경비대를 거쳐 대한민국 국군 형성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돼 왔다. 그러나 만주국의 ‘공비 토벌’ 경험과 제주 4·3 초토화 작전 사이의 인적·제도적 인과관계를 구체적으로 규명한 연구는 드물어, 이번 저작이 새로운 논점을 제기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카무라 교수는 제주도의 장묘(葬墓) 문화를 비롯해 제주도민과 재일 제주인의 생활문화를 연구해 온 문화인류학자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저서는 4·3 무장봉기에서 대량 학살로 이어지는 과정을 주민의 생활과 생업이라는 시각에서 조명한 전반부와, 4·3 희생자 위령과 제주 민속문화, 재일 제주인 1세대의 삶을 다룬 후반부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생활 속의 4·3, 4·3 속의 생활’이라는 시각에서 제주인의 역사적 경험을 재해석하고 있다. 오랜 기간 축적된 기존 4·3 연구의 면밀한 검토와 저자의 꾸준한 현지 조사를 종합적으로 담아낸 성과로서, 한국에서도 널리 읽히기를 바라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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