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메모리는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대만과 경쟁에서 불리한 처지다. 인공지능(AI) 시대에 힘을 내야 할 팹리스(반도체 설계) 분야는 걸음마도 떼지 못하는 수준이다. 덩달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도 약화되고 있다. AI 반도체도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이 신경망처리장치(NPU) 플랫폼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데 우리 기업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만은 파운드리만으로도 잘살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포기하고 메모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 규모 등을 고려하면 메모리·팹리스·파운드리를 모두 잘하는 것이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일견 타당해 보인다.

이러한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아직 후퇴 전략을 얘기하기에는 이르다. 전체 반도체 시장은 2030년경 1조 달러 규모로 지금의 두 배 정도로 성장할 텐데, 상당 부분의 성장은 팹리스·파운드리 분야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메모리 시장의 성장은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군다나, 메모리 분야를 추격해오는 중국의 시장 잠식을 고려하면, ‘메모리 회귀전략’은 반도체 시장에서 ‘점진적 후퇴전략’에 가깝다.
파운드리의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자면, 첫째, 최첨단 반도체를 제조해줄 수 있는 기술과 전후방 생태계를 확보할 수 있는 경쟁국들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미국과 일본의 ‘첨단 반도체 시장 복귀전략’은 자국 내 생태계 구축이 어려워서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둘째, 대만의 확장전략도 이미 한계에 도달해서, 앞으로는 파운드리 시장의 성장에 따라 우리에게 기회가 많아질 수 있다. 따라서 파운드리 시장은 당장의 어려움을 버텨내기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해볼 수 있는데, 전제조건은 미래시장에 대비한 초격차 기술 확보다.
팹리스 부문은 강력한 경쟁국이 많다는 것이 큰 어려움이다. 하지만 미래의 반도체산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파운드리·메모리·팹리스 모두 협업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팹리스를 포기하기도 어렵다. 결국, 팹리스는 파운드리와 메모리의 협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부문을 중심으로 육성해야 할 텐데, AI 대전환기라는 상황 때문에 무리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어서 우려된다.
곧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AI 시대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근거한 과다한 투자보다는 우리 실력과 미래전략에 맞춰 합리적인 R&D 투자 정책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