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20일 취임 1주년을 맞는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분야를 중심으로 한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 구축”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라이 총통은 미국·중국간 관세를 둘러싼 갈등으로 요동치는 세계 경제 속에서 민주주의 진영과의 공급망 구축 및 자유무역 확보가 대만의 생존전략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친미·독립' 성향으로 알려진 라이 총통은 13일 공개된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반도체와 AI 등 대만이 강점을 가진 분야를 중심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질서를 지켜야 한다”며 “경제뿐 아니라 대만의 안보를 위해서도 민주 진영과의 공급망 협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침해하고 정부 보조금을 대량 투입해 부당하게 저가 상품을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다”며 이러한 행위가 자유무역의 이념에 어긋난다고도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대만 제품에 대한 고율관세(32%) 부과 계획을 두고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전략도 제시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 의도에 대해 “재정 문제 해결, 산업화 강화, AI 중심 국가 건설, 세계 평화에 있다”고 평가한 뒤 “미국 제품 구매와 투자, 비관세 장벽 해소에 동의하고 미·대만 간 무역적자를 확실히 줄이겠다”고 강조했다. 보복관세 부과라는 맞대응보다는 협상을 통해 이를 낮추는 방향을 원한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그러면서 “협상을 통해 ‘제로(0) 관세’에서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대만에 대한 고율 관세가 미국에 손해라는 점도 부각했다. 대만의 주요 수출 품목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사용하는 첨단 반도체 및 IT 부품이다. 라이 총통은 “미국이 대만에 관세를 매기면,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 등 대만 기업의 미국 투자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실제 대만은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 천연가스 수입 확대 등을 통해 양국 간 무역 불균형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협상을 이어가면서도 타격이 불가피한 자국 기업들을 위해 산업계에 930억 대만달러(약 4조 3000억원) 지원과 4100억 대만달러의 특별예산을 준비했다고도 설명했다.
미·중 관계에 대해서는 “국가 선택이 아닌 가치선택”이라며 우회적으로 중국에 대한 견제구를 날렸다. 그는 “반드시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며 “국가 간의 선택이 아니라, 민주주의 헌정 체제를 선택할 것인가, 전제독재 체제로 회귀할 것인가라는 가치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날로 심화하는 양안 관계를 두고는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고 최선의 준비를 해야 한다”며 국방비 증액과 자위력 강화 계획을 밝혔다. 기본적으로 “공동번영을 원한다”고 밝혔지만, “중국이 대만 병합 의도를 바꾸지 않았고, 장기적인 침투공작도 심화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지난해 중국 관련 스파이 사건으로 기소된 인원이 64명으로 2021년의 3배로 증가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라이 총통은 “중국과 대만이 전쟁으로 발전한다면 그것은 중국의 의도 때문”이라며 “대만과 필리핀, 일본, 미국은 협력해 중국의 작전을 막고 군사훈련이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닛케이는 편집국장이 대만 총통부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이날 조간신문에 대대적으로 게재했다. 1면은 물론 3면과 7면 전면에도 관련 기사를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