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정부는 일본이 주도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재추진 방침을 공식화했다.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강화 추세에 대응하려면 다자 무역 체제 참여를 통한 안전망 확보가 한층 시급해졌다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우군이 돼야 할 여권 곳곳에서 CPTPP 가입을 속전속결로 추진하는 걸 경계하는 듯한 기류가 감지돼 주목된다.
지난 19일 외교부 업무보고 현장. 조현 외교부 장관이 “내년에 CPTPP 가입을 추진하고 일본과의 경제협력도 심화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보고를 비공개로 전환하기 직전 김민석 국무총리가 “실제로는 CPTPP 가입 추진이 잘 되지 않을 현실적인 측면이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국내적인 제약요인을 말씀하시는 거냐”는 조 장관의 질문에 김 총리는 “그렇다. 젊은 세대에서는 심리적 걸림돌도 낮아지고는 있지만, CPTPP가 당장 진행될 것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면이 있다”고 부연했다. 그 이유로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농수산물 문제”를 거론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지난 24일 브리핑에서 CPTTP 가입 추진 방침에 대해 “CPTPP 추진을 검토한다는 방향은 정부 안에 있는 건데, 필요하면 국민적 공감대를 이뤄야 하고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대처할지를 검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현실적 제약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었다.

여권 내 신중론은 일본이 주도해 만들어진 CPTPP에 가입할 때 치러야 할 ‘입장료’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게 후쿠시마산(産) 식품 수입 문제다. 윤석열 정부 때도 CPTPP 가입은 국정과제였지만, 2023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슈가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면서 난관을 맞닥뜨렸다. 수산물 개방이 CPTPP 가입의 선결 요건처럼 인식되고 이를 공개 거론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가입 추진 동력은 사실상 소멸했다.
관련 소식통은 “일본은 수산물 금수 조치 해제를 CPTPP 가입 승인과 교환하려 할 가능성이 큰데, 국민 감정이 이를 허락할 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한·일 정상은 내년 1월 중 대면 정상회담을 열 전망인데, 여기서 한국의 CPTPP 가입에 대해 큰 틀에서 공감대가 형성되더라도 실제 가입을 논의하기 시작하면 여러 변수가 돌출할 수 있다. 일본 내각은 한·일 관계 개선의 선순환 흐름을 이어가는 차원에서 무리한 요구를 자제한다 해도 관련 지역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일본 의회가 가입의정서 비준 여부 등을 두고 제동을 걸 여지도 있다.
초대형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CPTPP는 일본·뉴질랜드·말레이시아·멕시코·베트남·브루나이·싱가포르·칠레·캐나다·페루·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국이 창설 멤버로 참여해 2018년 12월 출범했다. 지난해 역외에서 유일하게 영국이 가입 절차를 완료해 회원국은 12개국으로 늘었다.

핵심 국가는 단연 일본이다. 지난 2017년 미국 트럼프 1기 행정부가 탈퇴를 선언하면서 무산될 뻔했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CPTPP로 되살린 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이기 때문이다. 가입하려면 12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한 가운데 특히 일본의 협조가 절대적인 이유다.
실제 일본은 영국이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후쿠시마산 식료품 수입 재개를 카드로 활용한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처한 환경은 더 까다롭다. 2022년 5월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후쿠시마산 팝콘을 함께 나눠 먹는 쇼맨십을 선보였다. 이어 6월 영국은 후쿠시마 등 9개 현의 23개 품목에 대해 방사성 물질 검사를 의무화했던 규제를 폐지했다. 이로부터 9개월 뒤 CPTPP 회원국들은 만장일치로 영국 가입에 합의했다.
대만 역시 지난 2021년 9월 CPTPP 가입을 신청한 뒤 이듬해 2월 일본 요구를 수용해 후쿠시마 포함 인근 5개 현의 식품 수입을 허용했다. 다만 아직 가입을 승인받지는 못했다.

국내 농축산 업계의 저항도 주요 뇌관이 될 수 있다. 관세 철폐율이 무관세 수준인 97%에 달하는 CPTPP 가입 시 호주·캐나다·뉴질랜드 등 농축산업 강대국으로부터 저가 물량이 쏟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22년 3월 “CPTPP 가입 시 향후 15년간 농업 부문에서만 총 6조 6000억 원, 연평균 최대 4400억 원 규모의 생산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인 2022년 4월 CPTPP 가입 신청을 목표로 앞서 3월 사전 공청회를 열었을 때도 관련 업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른 농축산 단체 회원 40여 명은 공청회 시작 20분 전 단상을 점거하며 “농어민 말살하는 CPTPP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마이크를 빼앗는 등 완력을 행사했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거친 몸싸움이 이어지면서 결국 공청회는 시작 1시간 만에 중단됐다. 통상절차법상 필수 단계인 공청회가 파행을 맞고 국회 보고마저 무산되자 정부는 결국 가입 신청서 제출을 포기했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일본 수산물과 관련한 국민 정서 뿐 아니라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은 당연히 해결해야 할 숙제”라면서도 “이재명 정부가 60%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보수가 아닌 진보 정부이기에 국민을 설득하기에 유리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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