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나설 후보를 정당이 추천하는 게 공천이다. 공천은 정당의 인증이다. 사실상 양당제인 우리나라 실정에서 공천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50%다. 특정 정당 독점구조의 호남이나 영남 광역단체장의 경우, 공천 후보는 당선이 100% 보장된다. 후보들이 정당 후보 간 대결인 본선보다 정당 내부 인물 간 경선에 매달리는 이유다.
문제는 당선된 광역단체장이 자신을 인증한 정당에 고마움을 갖기 보다는 자신의 능력으로 돌연 착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을 지역차원에서 구체화하기보다는 차기 당선을 위해 선거기술(권리당원 확보)을 익히는데 몰두한다. 표 얻기에 용이한 공약(단기 성과)을 골라 설계하기도 한다. 정당이 지향하는 공약은 어느덧 중앙당에 떠넘겨진다. 정당 공약을 기대한 유권자가 정책에서 외면당하고 소외되는 순간이다.
호남을 안방이라 자처하는 민주당의 5대 공약(대선 후보)을 살펴보자. 공정성장 실현, 경제적 기본권 보장, 보편 복지국가 토대 구축, 일과 돌봄이 걱정없는 사회, 청년에게 기회보장이다. 이 가운데 국민 유권자에게 각인된 공약은 경제 공약으로서 ‘기본 시리즈’ 정책이다.
일정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토지세, 기본주택 100만호 공급, 국민에 균등 지급하는 기본소득탄소세, 기본소득목적세 도입, 저금리의 기본금융도입 등이다. 많은 국민 유권자가 열망했고 호남 유권자의 관심은 유난히 뜨거웠다. 국가 재원이 차등 지원돼 지역차별이 구조화되고 일상화된 호남이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고령화, 지방소멸이 뚜렷한 지역이란 점도 기본 시리즈 정책을 염원한 이유였다. 부유한 지역이라면 구태여 기본 시리즈에 박수 보낼 일이 없으리라.
민생회복 지역화폐 호남단체장 외면, 정부에 명분
임기 절반을 훨씬 넘긴 호남의 세 광역단체장을 돌아보자. 자신을 공천한 정당 철학을 지역단위에서 구현한 단체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민생회복 지원 명목의 지역화폐 1인당 25만 원 정책이 번번이 거부되고 있음에도 호남에서 규모를 줄여서라도 지원한 곳은 없다. 시범 시행은커녕 호남에서조차 외면했으니 현 정부로선 흡족할 일이다.
역설적으로 가난한 호남에서도 할 수 있으니 국가 단위에서 마땅히 실현가능한 정책임을 보여줄 기회를 호남단체장이 앞장서 짓눌렀다. 가난하기 때문에 호남이 민생회복과 지역경제 활력의 실험실이어선 안되는가? 호남형 기본시리즈(소득, 주택, 금융)를 부분적으로 시범 실시하면 안되는가?
세 단체장은 지금처럼 정기국회 회기 중에는 기를 쓰며 예산을 챙긴다. 결국 지역구 국회의원과 소속 정당에 매달린다. 보도블럭 예산낭비에 민감해진 지역주민들은 얼마 따냈다는 예산 보다도 그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가에 관심을 더 갖는다. 늘어난 자영업 소상공인들은 대놓고 지역화폐를 말한다. 경제가 어려우니 지역민의 안목과 관점이 확 달라진 게 현실이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제모글루와 로빈슨 교수는 저서 ‘권력과 진보’에서 기술 발전이 인류의 삶에 번영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권력을 빼놓고는 인류의 진보를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결국 노동자들이 정치권력을 강화하고서야 비로소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었음을 논증했다.
저자들은 권력자와 엘리트가 설정한 비전에 도전하라고 말한다. 부자감세로 재정이 파탄 난 지금, 서민 복지를 위한 정책 실현에 힘쓰고 정책 비전을 재구성해야 함을 강력히 시사한다.
호남의 광역단체장이여, 그대를 지역민에 인증한 공당에 최소한의 도리를 보이라! 공당에 표를 몰아준 호남 유권자에게 도리를 다하라!
김명성 <전 KBS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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