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은, 제멋대로 한다
이토 아사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몸과 신경과 마음에 대해서는 말하기 까다롭다. 우리는 몸(육체)과 마음(정신)을 별개의 것으로 여기는 언어 습관에 자연스레 젖어있지만, 이미 여러 실험과 관찰들이 그런 습관과 속설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그런 성과들을 말로 표현하다 보면, 또다시 성급한 속설과 뒤섞여 퍼지기 일쑤라는 점.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너무나 복잡한 탓도, 언어 습관이 사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탓도 있다.
미학을 전공한 지은이 이토 아사는 『몸은, 제멋대로 한다』에서 이런 교착 상태를 피해갈지도 모를 오솔길을 보여준다. 그는 다섯 명의 실험가들이 진행하는 연구를 들여다보고 인터뷰한 내용을 조근조근한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공동연구를 함께 했었다는 인연 덕분인지 논문에는 담기지 못하는 배경과 사정들까지 매끄럽게 담았다. 학계를 뒤흔들거나, 우리의 생활을 영구히 바꿀 것이라는 흔한 과장 광고 따위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언뜻 흥미롭지만 사소해 보이는 실험과 장치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가슴에 어안렌즈 카메라를 차고 돌아다니는 사람, 선생님의 손놀림을 따라 해보게 하는 피아노 전공 학생용 외골격 장갑, 가상현실 탁구 훈련 장치 등등. 가장 심오해 보이는 실험이라야 정수리에 뇌파탐지용 캡을 쓰고 태블릿 화면의 원숭이 애니메이션이 꼬리를 흔들도록 ‘학습’하는 일이다. 공통된 테마를 찾자면 평소 우리 의식이 눈치채기 힘든 몸과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기계의 도움으로 짚어내는 일이다.
거창한 목적을 내세우지도 않고, 위압적이지도 않게 진행된 실험들을 구경하다 보면 몸과 마음에 대한 속설과 통념들이 조용히 부서진다. 때로는 이토가 조용한 어조로 전달하는 풀이를 읽다가, 내가 잘못된 특정 통념에 젖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일부 예로 들자면, 생각이 몸을 움직인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또 의식이 몸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다고 아쉬워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몸을 완전히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한 덕분에 비로소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다. 흔히 능력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인위적 서열화에 불과해서 각자의 몸과 마음이 새로운 능력을 깨칠 가능성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
복고적인 작가라면 이 지점에서 최신 기술들의 ‘폐해’를 경고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종 실험 연구를 참관한 인문학자 이토는 최신 기술들이 낳는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19세기적 사유는 몸과 정신이 별개의 것이라고 착각해 “정신을 자유롭게 해방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요구에도 부응할 수 있는 몰개성적이고 무색무취한 몸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최신 기술들은 개개인의 몸과 마음이 일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고유성을 지니고 있음을 읽어낸다. 그래서 의식이 속수무책이거나 몸이 악화되는 순간에 기술이 개입해서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자그마한 사례들을 통해 담담히 풀어내었다. 기술적 특이점 운운하며 세계의 운명이 획일적으로 바뀐다는 폭력적 거대 담론이 날뛰는 시대에 차분함을 덧대는 녹차 한잔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