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졸업이 즐겁지 않은 졸업생들
AI 확대에 불확실한 경기
기업들 신규 채용에 부담
‘이공계는 꽃길’ 이젠 옛말
유학생은 비자 문제까지

대학 졸업 시즌을 맞아 졸업생들의 취업난이 심각하다. 취직할 곳을 찾지 못해 전공과 무관한 분야를 두드리는가 하면, 유학생들은 귀국을 택하는 등 취업 시장 분위기는 냉랭하다.
연방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대학을 졸업한 22~27세 사이 실업률은 5.8%(3월 기준·그래프 참조)다. 특수 상황이었던 팬데믹 기간(2020년 4~2021년 7월·실업률 6~13.4%)을 제외하면 지난 2013년 11월(5.6%) 이후 최고치다.
졸업 후 현장실습(OPT) 신분으로 있던 김규희(25·유타대 커뮤니케이션) 씨는 최근 한국행을 결정했다.
김씨는 “50곳이 넘는 기업에 지원했지만, 연락이 온 건 단 3곳뿐이었다”며 “그마저도 조건이 좋지 않았고 취업준비생으로 계속 체류하는 것이 불안해 귀국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올해 USC를 졸업한 김성준(23) 씨는 한때 ‘입사 보너스’까지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자지만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주권자라 유학생에 비해 기회가 더 많은 김씨도 “지금 이공계는 전공자 포화 상태라서 신입직을 구하는 회사를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며 “요즘은 전공과 무관한 곳에도 이력서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들의 불완전 고용률은 무려 41%에 이르고 있다. 이는 대졸자가 학사 학위가 필요 없는 직종에 종사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지난해 샌디에이고 주립대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한 비비안 변(28) 씨는 전공과 무관한 회계 사무소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
변씨는 “졸업 전부터 이력서를 수십 곳에 냈지만 하나도 오퍼를 받지 못했다”며 “지금 17달러 남짓한 최저 임금을 받고 있지만 영주권 신청 때문에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의 취업난은 이공계와 인문계 구분 없이 나타나고 있다.
센서스의 지난 2월 기준 전공별 실업률 통계를 살펴보면 인류학(9.4%), 컴퓨터 엔지니어링(7.5%), 커머셜 아트&그래픽 디자인(7.2%), 파인 아트(7%), 사회학(6.7%), 화학(6.1%), 인포메이션 시스템&매니지먼트(5.6%), 공공 정책(5.5%), 경제학(4.9%) 등 전반적으로 실업률이 높다.
유학생 출신은 신분 문제까지 고민해야 한다. 유학생은 학생 비자의 연장 선상인 ‘OPT’ 기간 동안 전공에 따라 1~3년간 일할 수 있다. 취업에 성공해도 추첨제인 취업 비자(H-1B)의 관문이 남아있다. 추첨에서 탈락하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는 기업이 채용 자체를 꺼릴 수도 있다.
지난달 15일 UCLA에서는 대학 측이 주최한 취업 박람회가 진행됐다. 졸업을 앞둔 150여명의 학생들이 이력서를 들고 행사장을 찾았다.
이날 참석한 의료기기 업체 메드트로닉의 인사 담당자인 케이트 스미스는 “기업 입장에서는 좋은 인재를 뽑아 장기적으로 함께 가고 싶지만, 유학생 출신은 취업비자 추첨에서 탈락하면 다시 채용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며 “아무래도 비자 스폰서십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취업비자 당첨률은 30%에도 못 미친다. 이민서비스국(USCIS)에 따르면 2024-2025 회계연도에만 총 47만 9953명이 취업 비자를 신청했다. 이 중 28.16%(13만 5137명)만 비자를 받았다. 전년도(2023-2024년도) 당첨률 역시 25% 수준에 불과했다. 취업비자 신청자 4명 중 1명만 성공하는 셈이다.
그러나 보니 귀국을 택하는 유학생이 늘고 있다. 오는 8월 졸업 예정인 유학생 박세름(23·유타대) 씨는 “요즘 주변 친구들 90% 가까이가 귀국을 고려하는 것 같다”며 “유학생은 비자라는 제약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인공지능(AI) 사용 확대로 인한 업무 환경 변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도 취업난의 원인으로 꼽힌다. 전국대학생·고용주협회(NACE)는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고용주들은 채용 인력을 0.6%만 늘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의료 분야 스타트업 ‘올리 헬스’의 사무엘 김(48) 인공지능 개발자는 “현재 우리 회사도 신입 엔지니어 채용 계획이 없다”며 “보통 대기업들은 신입 엔지니어를 채용해 양성을 하는데 지금은 인력을 줄이고 있는 데다 기본적인 업무는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상황이라 엔지니어 전공자들의 취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학 연구개발 예산 삭감 정책도 취업 시장을 더 얼어붙게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UCLA를 졸업하고 의료 연구직 취업을 준비 중인 이승엽(26) 씨는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연구 기관들의 예산이 줄면서 연구원 채용 자체를 꺼리고 있다”며 “대학원생을 선발했다가 예산 문제로 채용을 취소하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송영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