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 상쾌’ 세상 풍자 …‘만담 DNA’ 깨우다 [나의 삶 나의 길]

2025-04-01

부친 ‘장소팔 만담’ 맥 잇는 장광팔 만담보존회장

장에 소 팔러 갔다가 나와서 장소팔

장에 광 팔러 갔다가 나와서 장광팔

선친의 뒤이어 40여년 만담가 외길

1960·70년대 가난하고 배고픈 시대

장소팔·고춘자 콤비 재담에 웃음꽃

라디오 방송시간엔 동네거리 ‘한산’

삼형제 중에서 서사 문학 관심 많아

‘장소팔 만담’ 체계적 정리·보존 결심

만담 무대라면 어느 곳이든 달려가

“우주의 기원 빅뱅 이전에는 지오디”

MZ세대 겨냥 만담 유튜브 활동도

서울문화유산 지정 등 대중화 온힘

‘만담(漫談)’을 아시나요?

만담은 1960∼70년대 TV가 널리 보급되지 않아 라디오를 즐겨 듣던 시절, 두 사람이 재치 있는 말로 세상을 풍자하며 국민의 웃음과 위안을 담당했던 공연의 한 장르다. 젊은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50대 이상은 추억이 새록새록할 수 있다. 당시 장소팔(본명 장세건·1922~2002)은 ‘국민 만담가’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 스타였다. 그가 고춘자(1922~1995)와 찰떡 콤비로 주고받은 KBS 라디오 만담 프로그램 ‘내 강산 좋을시고’ 방송시간이면 사람들은 라디오 앞에 삼삼오오 모였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장소팔과 고춘자의 입심에 일상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렸다. 두 사람이 출연하는 전국 곳곳의 만담 공연도 매진 사례를 기록하는 등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애석하게도 만담의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TV 영향력이 커지면서 만담가들이 설 무대도 줄어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이를 누구보다 안까깝게 여기며 대중의 기억 속에 잊혀가는 만담을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이 있다. 장소팔의 둘째 아들 장광팔(본명 장광혁·73) 만담보존회장이다. 그는 ‘장에 소 팔러 갔다가 나왔다’는 부친의 예명(장소팔) 어원을 차용해 ‘장에 광 팔러 갔다가 나왔다’는 뜻을 담은 예명(장광팔)을 쓴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장 회장은 지난 40여년간 직접 만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과 배우로도 활동하며 만담가로서 외길을 걷고 있다. 만담을 서울시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자 발 벗고 나선 그를 지난달 20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젊은 세대는 만담과 장소팔 선생에 대해 잘 모르는데.

“만담이란 두 사람이 주고받는 재미있는 말로 세상을 풍자하는 우리의 전통 이야기 문화다. 아버지께서 조선 고종 때 가무별감으로 궁중 연회를 담당하던 박춘재 선생에게 재담을 배운 후 무대 공연과 라디오에 적합하게 ‘민요 만담’이란 장르를 개척했다. 한국전쟁 직후라 모두 가난하고 배고팠고, 사는 재미가 없었던 1960~70년대, 아버지께서는 입담 하나로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다. 아버지의 만담 방송시간이 되면 청취자들이 동네 라디오 있는 집으로 모였다. 방송시간에는 동네 거리가 조용했다고 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개그맨 유재석이나 강호동보다 인기가 많았다.(웃음) 팬들이 우리 집까지 찾아와 사인을 받아갔다. 전국적으로 만담 행사가 많아 어릴 적 아버지 얼굴을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만담 보존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국민(초등)학교 시절부터 만담과 가까이 했다. 아버지가 만담 대본을 쓰실 때 200자 원고지 사이에 먹지를 끼워 나온 사본을 고춘자 선생께 전하는 심부름을 했다. 대학(단국대 법학 전공) 재학 중에는 고시 준비를 하면서도 틈틈이 만담 방송대본도 써드렸다. 아버지는 삼형제를 두셨는데 형님이 병원을 하시고, 동생은 사업을 했기 때문에 출판사를 운영하고 서사문학에도 관심이 있는 내가 만담 보존에 나서게 됐다. 출판사와 서점을 경영하면서도 만담 공부는 계속했다. 아버지가 연로해 무대에 서기 점점 힘들어지자 ‘장소팔 이후의 만담’이 걱정됐다. 더 늦기 전에 만담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주교육대학원에서 문화콘텐츠를 전공해 ‘장소팔 만담연구’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만담 보존에 뛰어들었다. 아쉬운 점은 아버지 생전에 함께 만담 무대에 서 보지 못했던 일이다. 요즘은 연예인들이 자녀들과 공연도 함께하곤 하는데, 그때는 그런 게 어색했다. 아버님이 활동하지 않으면서 그게(함께 무대에 서지 못한 게) 아쉽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

“‘만담은 여유와 배려에서 나온단다’라고 늘 말씀하시면서 이웃과 주변을 잘 챙겼던 분이다. 1960년대 만담 전성기 때는 돈도 많이 버셨는데 버신 만큼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겼다. (형편이) 어려운 지인이 돈을 빌리러 온 눈치이면 집으로 불러 대접하고 하룻밤 재우셨다. 다음 날에는 동네 시장에 데려가 힘이 약한 사람에게는 짐 자전거를, 건장한 사람에게는 손수레를 사줬다. 그걸로 돈벌이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길에 돈이 널려있으니, 주워 담을 그릇만 있으면 돼!’라고 하셨다. 돌아가시면서도 ‘이제 나는 심심해서 죽는다’라고 만담 유언을 남기셨다. 뼛속까지 만담인 이었다.”

―일본과 중국에도 만담과 유사한 장르가 있다고 들었다.

“한국의 만담과 같은 것이 일본의 라쿠코(落語)와 만자이(萬才)다. NHK에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방영하는가 하면 정부 주관 경연대회를 여는 등 적극 보전하고 있다. 도쿄에는 라쿠코 전용 극장이, 오사카에는 만자이 전용 극장이 있다. 중국에서는 샹성(相聲)이 우리의 만담과 같다. 역시 중앙정부의 보호 덕에 인기 있는 전통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연변에서조차 소민족문화보호정책으로 만담을 비물질 문화재로 지정해 육성하고 있다. 우리만 사실상 방치하고 있어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다.”

―만담을 서울시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우리도 더 늦기 전에 만담 보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난해부터 우리의 전통 이야기 만담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뜻있는 분들과 함께 힘을 쓰고 있다. 만담이 서울시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전수자와 이수자를 둘 수 있고 체계적으로 후계자를 양성할 수 있다. 지금은 몇몇이 배우겠다고 찾아와도 조금 가르쳐 놓으면 개그맨으로 가버린다. 만담은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만담이 쉬운 것도 아니다. 코미디는 방송작가가 있는데 만담은 작가가 없다. 직접 기승전결이 있는 대본을 써야 하는 등 연기 못지않게 글재주도 있어야 한다.”

―만담의 보존·계승을 위한 그간의 활동은.

“지금도 아버지 만담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이분들과 함께 ‘민요만담 전국지회’ 설립 작업을 하고 있다. 잊혀가는 만담을 다시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만담을 할 수 있는 무대라면 방송이든 지방이든 어느 곳이든 달려간다. 몇 년 전 MBC 창사특집기획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 ‘장소팔역’으로 출연했고, KBS ‘아침마당’이나 KBS 시니어 프로그램 ‘황금연못’에도 나가 만담을 선보였다. 지방축제 때도 그곳의 인문지리를 소재로 만담 공연을 수시로 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거창 장(醬) 포럼에서, 이달에는 강경에서 ‘젓타령 만담’을, 6월 홍성 새우젓 축제에서는 ‘새우젓만담’을 선보인다. 어린이 뮤지컬 ‘꿈꾸는 허수아비’에서 개그우먼 장미화 선생과 극 중 만담가 역으로도 출연하고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올 하반기에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롱비치에 정박 중인 ‘빅토리아호’(6·25전쟁 당시 함흥철수 작전 때 피난민을 수송한 배)에서 기념공연도 추진하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만담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저의 만담은 아버지 ‘장소팔 만담’의 특징인 ‘남녀 만담’ 형식과 ‘빠른 속도의 나열 방식’, ‘서울 토박이 말투’는 계승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통적 공연 장르인 재담에 음악, 연극, 영화 등의 장르가 더해진 나만의 만담도 펼치고 있다. 만담 형식의 연극 ‘리어커를 탄 리어왕’, ‘테스 형수’를 올려 호응이 컸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만담 유튜브 활동도 하고 있다고.

“만담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세대를 관통하는 웃음과 공연형식의 개발과 구현에 힘을 쏟고 있다. MZ세대가 선호하는 유튜브 쇼츠 제작도 그 일환이다. 찰리 채플린을 ‘차라리 재뿌린’으로 변용한 쇼츠 타이틀을 ‘차라리 재뿌린의’ <만담이 인문학에 농을 건네다>로 매주 1회씩 올리고 있는데, 젊은층의 반응이 좋다. 예컨대, 우주의 기원 빅뱅이론에 관해 설명하다가 만담 퀴즈로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묻는 식이다. 정답은? “빅뱅 이전에는 ‘지오디’가 있었습니다” 하고 만담으로 허를 찌르며 마무리한다. ‘추기경 편’에서는 추기경 선출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김수환 추기경님께 몇 개 국어를 하시는지 묻는다.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면 추기경님 답변은? “두 가지 말을 합니다. 주로 사실대로 이야기하다가 가끔 거짓말도 섞어서 합니다”라고 하면 폭소가 터진다. 현재 38편을 올렸는데, 젊은층도 재미있어 해 계속할 생각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저도 이제 나이가 고희를 넘긴 만큼 재능 있는 젊은 친구들과 우리의 전통 이야기를 소재로 만담 기반 총체극을 만들고 싶다. 가능하면 전국 순회공연도 해외 무대도 많이 만들어 잊혀져 가는 우리 만담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 만담이 일부 젊은 세대에겐 시시한 말장난으로 보일지라도, 만담이 한 시대의 웃음을 책임졌던 만큼 하나의 장르로 보전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숙명처럼 갖고 산다. 문화체육관광부나 서울시 등에서 만담에 관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만담을 배우려는 MZ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만담의 가치를 알고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갈 이들을 늘 기다리고 있다.”

장광팔 만담보존회장은… ●1952년 서울 출생 ●경기중, 동성고, 단국대 법학과 졸업 ●진주교육대 교육대학원 ‘장소팔만담연구’논문 석사 ●만담보존회장 ●장소팔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전기수협회장 ●정해복지법인 상임고문 ●‘팔도강산 유람’ ‘소문만목래’ 등 만담 공연 1500여회 ●‘소통의 유머 리더십’ ‘Story를 입혀라’ ‘일반상식 3시간에 꿰뚫기’ ‘짜증과 맞짱뜨기: 20초에 사로잡아라’ 등 저서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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