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인류가 지식을 축적하고 문명을 일구어온 과정 속에서 책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을 형성해온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물음을 던져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인간은 기계를 만들었듯, 기계는 인간을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기술의 주인일 수 있는가”이다.
인간은 오랜 시간 도구와 기계를 만들어 왔다. 효율을 높이기 위한 고민과 경험의 결실이었다. 고려(Corea)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이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영향을 미쳤고, 지식 보급의 방식과 범위에 혁신을 가져왔다. 성경의 필사를 대체하면서, 중세 유럽의 지적 혁명을 촉진했던 것이다. 산업화시대에는 증기기관이 발명되어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이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도구를 만들며 자신의 한계를 확장해왔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전환점인 인공지능(AI)의 시대에 서 있다. AI는 인간의 지식과 언어, 감정, 판단을 학습가능한 데이터로 바꾸며 인간의 결정을 대신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이 도구는 점차 인간의 삶과 존재방식을 재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로봇이라는 물리적 신체가 결합되면서, AI는 더 이상 소프트웨어가 아닌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사이보그’를 상상해왔다. 인간의 유기적 한계를 넘어 기계와 결합한 존재, 새로운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형태다. 이제 그 상상은 과학소설(SF)의 영역을 넘어 현실의 과학기술로 다가오고 있다. 사이보그는 인간의 유기적 조직과 기계가 결합된 존재이며, 생명을 더 오래 지속시키기 위한 물질적 전환의 개념이기도 하다. 인간의 의식이 이전되는 방식으로서 말이다.
AI의 발전은 새로운 종의 등장을 예고한다. 거대한 언어모델(LLM)이 인간의 사고를 닮아가고, 이를 움직이는 물리적 신체가 결합하면 그 자체로 또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피지컬 AI(physical AI), 즉 지능형 로봇이 그 예이다. 하드웨어는 점점 유연해지고, 소프트웨어는 자율성과 학습능력을 탑재한다. 인간의 외적 자아인 ‘페르소나(persona)’를 기술로 구현한 것이기도 하다. 물리법칙 안에서 새로운 종의 출현을 부정할 수 없다면, 기술 진화 속에서 ‘기계 종족’의 등장도 배제할 수 없다. 아직은 상상속이지만, 새로운 존재로서 기계는 꿈틀거리고 있다.
문제는 제도다. 현재의 법과 제도는 인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기계는 도구이며, 법적 주체가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자율성을 지닌 AI가 인간의 의도를 벗어나 작동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에 책임을 묻는 논의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일부는 로봇에게 ‘법인격’을 부여하고, ‘책임재산’을 부여하자는 주장도 내놓는다.

이제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는 계속해서 인간을 위한 도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인간과 대등하거나 때로는 인간을 조정하는 존재가 될 것인가. AI는 이미 금융, 단백질 효소 분석, 신약개발, 콘텐츠 생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선택을 유도하거나 제안하고 있다. 인간의 의사결정권은 조금씩 기계의 알고리즘에 의존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징표인, 의사결정이 기술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기술은 인간의 결정을 대신하고, 책임을 분산시키며, 결국 법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그렇게 되면,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여전히 ‘주인’일 수 있을까.
‘인권’은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다. 그러나, 인간만을 위한 법체계, 인간만을 중심에 둔 사고방식은 이제 재정의돼야 한다.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존재와의 공존을 위해서라도, 법과 제도의 철학적 기반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인간은 기계를 만들었고, 인간을 위한 기계로 여겨왔다. 오늘날 AI는 인간의 시스템을 분석하고, 때로는 조정하려 들며 독자적 생존 논리를 작동시키는 듯하다. 이는 단지 가상의 위험이 아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은 기계와 대립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인간의 상상은 줄곧 현실이 되었다. 하늘을 날고자 했던 이카루스의 꿈은 비행기로, 탈로스는 휴모노이드로 구현되었다. 어느 순간 기계는 인간을 조정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의 기계는 인간을 위할지, 기계를 위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상상은 종종 현실이 되어 왔다. 기계는 인간의 욕망이 만든 산물이며, 그로부터 탄생한 존재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이제 인간의 언어와 감정, 기억마저 데이터화되는 시대에 우리는 묻게 된다. 데이터로 환원된 인간은 과연 여전히 ‘존재’로서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단순히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인간 중심’이라는 개념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결국, 우리가 여전히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