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탁이 끝난 뒤 2시간 후에 자동으로 건조까지 해줘.” “텔레비전 켜줘! 꺼줘!” 이제 가전제품은 단순 버튼이나 터치 입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의 자연어 지시를 이해하고, 음성으로 응답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다. 음성 인공지능(AI)(Voice AI) 모델의 등장이 단순한 기능 개선을 넘어, 말로 모든 가전 제품을 작동시키는 '보이스 가전 생태계(Voice Home Appliances Ecosystem)'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오픈AI가 차세대 음성 AI 기술을 탑재한 GPT-리얼타임 모델과 실시간 API(Realtime API)의 정식 버전을 공개하면서 그 변화가 시작됐다. 이 음성 언어 AI 모델은 기존의 STT(음성인식) → LLM(언어 모델) → TTS(음성합성) 과정을 하나로 묶어, 300~500밀리세컨드(ms:1초의 1000분의 1) 이내에 응답한다. 이는 사람 간의 평균 대화 지연(약 200ms)에 근접한 수준으로, 기계와의 대화가 사람과의 대화처럼 매끄럽게 이뤄지는 수준이다. 게다가 발화자의 억양·감정·호흡까지 자연스럽게 재현한다. 사람과 AI가 마치 전화 통화하듯 서로 말을 끊고, 다시 이어받으며, 멀티태스킹을 수행하는 진짜 '실시간 음성 대화'가 구현되는 것이다.
이 혁신은 곧 가전제품에서 시작된다. 냉장고가 '내부 재료를 기반으로 오늘 저녁 메뉴를 음성으로 추천'하고, 청소기가 '완료 후 상태를 음성으로 보고'하며, 에어컨이 '현재 날씨와 실내 습도를 비교해 최적의 온도를 맞추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전자제품을 작동시키기 위해 리모컨을 찾을 필요조차 없다. “텔레비전 9시 뉴스 켜줘. 에어컨 23도에 맞춰서 켜줘.”라고 말만하면 된다. 음성 언어 AI가 가전제품을 하나의 대화형 에이전트로 바꾸면서, 가정 전체가 곧 거대한 '보이스 생태계'로 변모하게 된다.
변화는 가정에 그치지 않는다. 산업현장과 기계 장비에서도 보이스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건설기계·의료장비·물류로봇에 음성 인터페이스가 탑재되면, 전문 패널이나 복잡한 명령어 대신 말로 지시만 하면 된다. “로봇 친구, 팔을 30도 낮춰”이렇게 자연어로 지시만 하면 기계는 즉각 반응하게 된다. 이는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계 사용의 진입 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추게 된다. 또 음성 AI 모델은 PC와 모바일의 주 인터페이스를 재편할 전망이다. 지금은 마우스·키보드·터치가 중심이지만, 머지않아 운영체제의 핵심 기능(앱 실행, 파일 검색, 환경 설정)이 모두 음성으로 간단하게 이뤄지게 된다. GPT-리얼타임은 OS API와 연동해 화면 밝기, 화상회의 접속, 보안 설정까지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 운영체계가 AI 보이스 OS로 확장되는 것이다.이러한 흐름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촉발시킬 전망이다.
첫째 플랫폼 모델의 출현이다. 제조사가 자사 제품군을 음성 AI 기반으로 통합해, 가전·자동차·PC를 하나의 보이스 플랫폼으로 연결할 수 있다. 둘째, 음성AI 서비스 모델의 출현이다. 구독형 음성 비서, 다국어 음성 번역, 음성 기반 원격의료 등 새로운 서비스 등장이 가능하다. 셋째, 데이터 모델이다. 방대한 음성 상호작용 데이터가 축적되면 맞춤형 추천·광고 등 새로운 데이터 비즈니스로 확장될 수 있다.결국, 음성 AI의 진화는 사람과 기계의 관계를 '명령과 조작'에서 '대화와 응답'으로 바꾸고 있다. 우리는 지금 모든 기계와 대화하는 시대, 즉 AI 보이스 혁명의 문 앞에 서 있다. 이제 기업은 이 변화에 맞는 뉴 비즈니스 디자인을 시작해야 한다.
최은수 인텔리빅스 대표·aSSIST 석학교수·CES2025 혁신상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