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질문을 잘해야 잘 살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을 제대로 부려 먹으려면 질문을 잘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벌써 오래되었다. 그래서 질문을 잘하는 요령과 기술을 설명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인터넷에도 그런 정보가 넘쳐난다. 기계 때문에 사람이 고생이다.
그런가 하면, 정치판에서는 질문의 기술이 묘하게 악용되면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모양이다. 대표적인 예가 여론조사라는 것인데, 질문을 어떤 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요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쁜 정치가들이 조작하고 악용하고픈 유혹에 빠져 못된 짓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인류의 문명이나 철학 등도 모두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예술의 근본은 궁극적으로 질문이다. 해답이 아닌 진지한 질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자신의 글쓰기를 ‘질문에 끝까지 가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춘기 이후로 늘 질문이 많았어요. 나는 누구인가부터 왜 태어나서 왜 죽는 걸까, 고통은 왜 있나, 나는 뭐 할 수 있지, 인간이란 건 뭐지, 이런 질문들이 늘 괴로웠고요. 그걸 질문을 하는 방식이 글을 쓰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게 되었죠.
하나의 소설, 특히 장편소설은 그 시기에 저에게 중요한 질문을 끝까지 완성해 보는 그런 거예요. 질문의 끝에 어떻게든 도달을 하면, 그 다음 질문이 생겨나고요. 그러면 다음 소설에서 그 질문을 이어가고 그래요. 질문을 완성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건 아닌데요. 그 질문에 끝까지 가보는 것, 그 자체가 답인 것 같아요.”
등단 후 근 30년 동안 작품을 통해 제기하는 물음은 이런 것이었다고 한다.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가?”
“세상은 왜 이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 “상실과 고통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나?”
그런데, 사실은, 우리네 인생 자체가 질문의 연속이다. 〈좋은 질문이 좋은 인생을 만든다〉라는 책의 저자 모기 겐이치로는 이렇게 말한다.
“질문이란 자신에게 맞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 행동과 사고를 이끌어내는 힘이다. 우리는 질문을 통해 기분 좋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나다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질문을 잘해야 좋은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진리다. 학문 연구나 공부도 그렇고, 세상살이도 그렇고, 특히 인간관계가 그렇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열린 마음으로 나누는 진심 어린 문답이 오가는 가운데 좋은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법이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현실에서는 정반대다. 상대방을 떠보는 질문, 은근히 무시하는 무례한 질문,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악성 질문들이 난무한다.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성장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같은 거창하고 철학적인 질문도 물론 필요하지만, 자잘한 질문들도 의미가 있다. 어제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지? 좀 더 다정하게 정성껏 대답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오늘 읽은 책이나 들은 음악의 감동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등등 일상생활을 되돌아보는 질문들….
바람직한 답을 얻으려면 자신의 감정을 얼렁뚱땅 속이려 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과 솔직히 대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인공지능에 앞서, 먼저 나 자신에게 질문 잘하는 법을 익혀야 할 판이다.
나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이 글은 제대로 되었나?
장소현 / 시인·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