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상별로 샀다가 버린 옷…탄소발자국 얼마나 남겼을까?

2024-10-09

경향신문 창간 78주년 기획

3000원 티셔츠 등 사고 버린 A씨 소비로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탄소발자국 평가 의뢰

‘딜리버-스루’ 소비 전보다 탄소배출 3.5배↑

서울에 사는 직장인 A씨(37)는 지난 1월부터 “사재기하듯이” 옷을 사기 시작했다. 중국 전자상거래 사이트 ‘타오바오’를 알게 되면서다. 반팔 티셔츠 한 장이 3000~5000원 정도라 부담은 없었다. 같은 옷을 흰색, 검정, 남색 등 색상별로 사들인 뒤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은 버리는 일이 반복됐다.

A씨의 ‘딜리버-스루’(Deliver-through·배송 즉시 버림) 소비는 얼마나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겼을까. 경향신문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A씨가 타오바오를 통해 구매한 물품 163건의 목록과 처분 내역, 생산지 정보 등 자료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전과정평가팀에 주고 탄소발자국 평가를 의뢰했다.

전과정평가(LCA)는 제품의 생산, 운송, 사용, 폐기 과정에 걸쳐 발생하는 환경영향을 수치화하는 평가 도구다.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뿐만 아니라 제품 생산부터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만들어졌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전과정평가팀장 최요한 박사는 A씨의 타오바오 구매 내역 중 가장 많이 사고 버린 물품인 ‘의류’에 한정해 탄소발자국을 평가했다. 분석 기간은 소비와 폐기가 집중된 1~4월로 제한했다. 경향신문이 A씨에게 확인한 2년 전 1~4월 소비 행동에도 LCA를 적용해 탄소발자국 차이를 비교분석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LCA를 개별 소비자 사례에 적용해 새로운 소비 패턴의 환경영향을 평가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통상 기업의 탄소배출 책임 평가에 활용된다.

A씨가 구매한 옷을 생산·운송·사용·폐기하는 과정을 분석한 결과, A씨는 지난 1~4월 옷 소비로만 681.61kg CO₂eq의 탄소발자국을 남긴 것으로 추산됐다. CO₂eq는‘이산화탄소 환산가’로, 여러 종류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수치다. 이산화탄소 681.61kg는 비행기로 서울과 부산을 6~7번 왕복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량과 맞먹는다. 이를 제거하려면 1년간 약 8.6kg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30년생 소나무 238그루가 필요하다.

‘딜리버-스루’ 소비가 남긴 탄소발자국은 2년 전보다 3.49배가량 늘었다. 지난 1~4월 소비를 통해 최종적으로 소유하게 된 옷은 25벌이다. 2년 전(20벌)과 비슷한 규모이지만, 그 과정에서 훨씬 많은 옷을 사고 버리면서 탄소발자국이 증가했다. 오래 고민해 한 벌씩만 옷을 샀던 A씨는 타오바오 이용 뒤에는 기본 티셔츠 등을 검정, 흰색, 곤색 등 색깔별로 사는 경우가 급증했다.

최 박사는 “소비가 늘어나는 만큼 많은 자원이 생산 공정에 투입, 운송, 폐기된다.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과 낭비되는 자원의 양도 증가한다”며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A씨와 같은 수준으로 소비를 늘리게 된다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100만t 단위까지 불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A씨의 ‘딜리버-스루’ 소비 탄소발자국은 특히 어느 구간에서 늘었을까. 대부분은 생산 단계 등 소비자 눈에 띄지 않는 데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LCA 결과를 보면, 탄소발자국의 절반 이상(54.5%)이 더 많은 옷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여기에는 면화 등 원료 물질 채취, 섬유 생산 공정 투입 전력, 섬유 염색·탈색 시 발생 폐수, 자투리 원단 폐기 오염 등이 포함됐다. A씨의 소비 행동이 변한 결과 더 많은 옷이 생산 공정을 거치며 탄소를 배출하게 됐다는 뜻이다.

옷 이동 거리가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운송 단계가 ‘딜리버-스루’ 소비 탄소발자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17%다. 비율로만 보면 생산단계보다 영향이 덜하지만, 이 부분 탄소배출량은 2년 전(1.65kg)보다 70배가 늘었다. 운송 과정은 이동 거리와 운송 수단에 따라 환경영향이 달라진다. A씨의 경우 국내 의류 매장을 주로 다니던 과거와 달리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타오바오 이용이 늘면서 옷의 운송 거리가 늘어난 점, 탄소 배출이 많은 항공운송을 자주 이용한 점이 탄소발자국을 늘렸다.

사자마자 버려지는 ‘패스트래쉬’(Fast+trash·실시간으로 생기는 쓰레기)도 탄소배출량을 키웠다. 폐기 단계에서 발생한 탄소발자국은 72.6kg CO₂eq로, 전체의 10%를 차지했다. A씨는 장당 3000~5000원 정도인 ‘초저가 티셔츠’를 색상별로 사들일 때마다 “5벌을 사면 한 벌 정도 건지는” 일이 반복됐다고 했다. ‘꽝’으로 판정된 나머지는 배송 직후 버렸다.

폐기 과정에선 버려진 옷이 소각, 매립, 재활용 중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는지에 따라 탄소발자국이 달라진다. 가장 오염이 심한 것은 소각이다.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등 섬유 소각 과정에서 각종 유해물질과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소각은 가장 흔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종량제 등으로 배출된 폐의류 중 68%가 소각됐다. 매립은 18%, 재활용이 13%다.

이밖에 해외로 수출되는 옷들이 재활용에 해당한다. 일부만 국내에서 중고로 판매되거나 섬유로 재활용되고, 대부분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대 저개발국에서 팔린다. 재활용은 다른 소비자에 의해 다시 쓰인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소각보다 나은 결말로 여겨진다. LCA에서도 일단 수출길에 올라 재활용이 결정된 옷들은 더는 추적 대상이 아니다.

바다를 건넌 옷들이 더는 탄소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최 박사는 “수출되는 옷이 선박을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추가로 탄소가 배출된다”며 “A씨 후에 옷을 받게 될 다음 사용자가 꾸준히 입는다면 탄소발자국은 줄어들겠지만, 여기서도 폐기되고 소각된다면 탄소발자국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 단계 탄소발자국은 소비 행동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엔 세탁기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전력, 세제 사용으로 발생하는 폐수 등이 포함된다. 최 박사는 “사는 옷이 10벌이든 20벌이든 소비자는 옷을 하루에 한 벌만 입고, 비슷한 주기로 세탁을 하기 때문에 환경 영향도 거의 차이가 없다”며 “문제는 옷을 많이 구매할수록 여기에 동원되는 자원의 양, 긴 거리를 운송하는 데 드는 에너지, 폐기물의 양이 많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전과정 탄소발자국 비중을 종합해보면, 유일하게 A씨가 ‘직접’ 배출하는 사용단계 탄소발자국은 전체의 17.8%에 불과했다. 나머지 82%가량은 생산·운송·폐기 과정에서 발생했다. ‘딜리버-스루’ 소비의 결과로서 탄소발자국이 늘어나는 것은 맞지만, 정작 대부분 환경오염은 소비자의 손 밖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런 구조에서 소비자 개개인이 자신의 행동이 불러올 환경 영향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최 박사는 “A씨 소비 변화를 LCA한 결과 소비자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탄소발자국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면서도 “싼값을 지불하고 상품을 빠르게 받아보는 사회에서 소비자들은 자신이 구매한 물건에 애착을 갖지 못하고, 버릴 때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각종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은 옷의 생산과 운송 과정을 제대로 알 수 없고 결과물만 받아보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딜리버-스루’ 소비 환경오염을 소비자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옷 ‘수명’이 짧아질수록, 생산단계의 환경 영향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그간 대부분의 LCA 데이터는 사용 단계에서 가장 많은 탄소발자국이 발생하는 것으로 가정해왔다. “의류는 사용 기한이 긴 제품이기 때문”이라고 2016년 홍콩 연구팀이 발간한 ‘의류 LCA 안내서’는 설명한다. 옷의 ‘유통기한’이 긴 만큼 소비자 개인이 세탁기와 세제를 사용하며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이 가장 크다는 의미다. ‘딜리버-스루’와 같이 ‘찰나’가 된 소비는 이런 구조를 바꿔놓았다.

중국 광둥대 공과대학 지쿤 리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지난 3월 SCI 저널 ‘종합환경과학’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옷을 적게 입고 버릴수록 생산단계가 전체 탄소발자국 발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옷을 120회 착용하고 버리는 ‘전통적 소비’에선 사용 단계(48%)가 전체 온실 가스 배출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반면, 7번만 입고 폐기하는 ‘패스트패션 소비’에서는 전체 탄소발자국의 70%가 생산 단계에서 발생했다.

A씨 사례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확인됐다. 2년 전 의류 소비에서는 전체 탄소발자국 중 62%가량이 사용 단계에서 발생했다. 반면 ‘딜리버-스루’ 소비가 남긴 탄소발자국 중에서는 생산 단계(54.5%)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다. 소비의 전 과정 중에서 사용 단계가 남기는 탄소발자국이 줄어드는 만큼, 생산 단계의 환경 영향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국제사회는 생산자 책임을 강화하는 각종 규제 시행을 앞두고 있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LCA 결과가 일정 기준을 충족한 제품에만 납품과 수출을 허용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생산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이 쉽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옷을 만들고, 폐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배출까지 생산자가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졌다.

한국에선 이런 논의가 더딘 편이다. 최 박사는 “소비가 빨라질수록 생산단계의 책임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A씨의 사례처럼 새롭게 등장한 소비 패턴의 환경영향을 지속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비자들의 패턴이 달라질 때 발생하는 환경 영향과 관련해 더 신뢰도 높은 조사가 진행된다면 기업들도 이를 참고해 탄소배출량을 줄이려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생산단계 기업들이 환경영향을 줄이기 위한 기술과 설비를 도입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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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연계 전시 소개

경향신문 창간 78주년을 맞아 게재하는 동명의 기획 시리즈와 연계한 전시가 오는 12일까지 지구와사람 갤러리홀(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66)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버려진 물건들의 생애사를 조명하며 기후위기 문제를 심각성을 알린다. 한 사람의 궤적이 담기는 오비추어리(부고 기사)와 같이 버려진 옷과 신발, 구두의 처음과 끝을 따라가는 작품들이 담겼다. 전시는 관람료는 무료다.

창간기획팀

유정인(정치부) 고희진(전국사회부) 이홍근(정책사회부) 최혜린(국제부) 정지윤·한수빈(사진부) 박채움(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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