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의 책상에는 ‘삼성 때문에…’라는 내용의 보고서가 자주 올라갔다고 한다. 당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외친 윤 대통령의 뜻대로 주가가 오르지 않아 채근이 이어지자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작성된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에는 “홍라희 전 리움 관장 등 삼성 오너 일가의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 때문에 삼성전자 주가에 탄력이 붙지 않고 있다. 대표기업 삼성이 오르지 않으니 코스피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반도체를 잘 알지 못했던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니 퀄(품질 인증)이니 하는 ‘외계 용어’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삼성 오너 일가가 주식을 무더기로 팔아 가며 마련한 상속세가 구멍 난 국가 재정에 버팀목이 됐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60% 상속세율에 따라 홍 전 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12조 원에 이른다. 이들 오너 일가는 2021년부터 5년에 걸쳐 이 세금을 나눠 내기로 약속한 상태다. “상속세를 내는 4월이 되면 삼성 방향으로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이 정부 내에서 회자되는 이유다. 올해 정부의 세수 추계 오차는 3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을 둘러싼 이 같은 상황을 재계에서는 ‘바보들의 합창’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신들이 물린 천문학적인 세금 때문에 주가가 낮아져 내수가 위축되고→이로부터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 경기 둔화세 속에 세금이 덜 걷히자→세금을 많이 물려서 다행이었다고 안도하는 모습이 바보들의 합창 같다는 얘기다. 당장은 아니지만 현대차 같은 기업들도 조만간 합창의 영향권 안에 들어서게 된다.
물론 정부도 우리나라 상속세의 문제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낮추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이 국회에 이미 제출된 상태다. 하지만 상속세를 진짜로 내려보겠다는 결기를 가진 관료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초거대 야당이 국회를 장악한 상태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어차피 안될 일’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퍼져 있다. 야당 설득의 선봉에 서야 할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 문제를 끌어안고 스스로 개혁의 동력을 잃었다.
이러는 사이 철옹성 같던 삼성도 흔들리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급락하자 홍 전 관장은 한 증권사에서 빌린 1000억 원 대출의 담보를 삼성전자에서 삼성물산으로 갈아탔다. 삼성전자의 담보 효력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먹잇감을 찾는 해외 투기 자본들이 이 같은 징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바보들의 합창이 문 밖의 하이에나들을 불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