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앞둔 ‘끝판대장’ 오승환 “마지막 날까지 550세이브 도전, 그게 바로 나”

2025-08-17

직접 마주한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투수 오승환(43·삼성 라이온즈)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경기 중과 달리 살짝 웃기도 하고 가벼운 농담도 섞으며 ‘인간미’를 보여주는데, 그래도 묵직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9회 마운드에 오른 그를 타석에서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양념을 전혀 섞지 않고 차분히 진솔한 대답을 들려주는 그는 야구할 때처럼 질문과도 진검 승부를 벌이는 듯했다.

지난 14일 KIA 타이거즈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마주한 오승환은 “기자회견으로 팬들께 은퇴를 널리 알린 이후에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아직 은퇴식을 하지 않은 데다, 시즌 중이라 ‘언제든 호출을 받으면 마운드에 오른다’는 각오로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설명이 따라왔다.

오승환은 KBO리그 역사를 통틀어 첫 손에 꼽히는 마무리 투수다. 지난 2005년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데뷔한 이후 21년 간 한국과 일본, 미국을 거치며 특급 소방수로 활약했다. 1096경기에 출전해 64승54패를 거두며 76홀드와 함께 549개의 세이브를 기록했다. 통산 500세이브는 국제 무대에서도 오승환 이전에는 두 ‘전설’ 마리아노 리베라와 트레버 호프만이 달성한 대기록이다. “오승환이 있어서 삼성은 8회까지만 야구를 하면 된다”던 류중일 전 삼성 감독의 과거 발언이 전성기 시절 그의 존재감을 대변한다.

오승환은 “은퇴 이후 새출발 계획에 대해 여러 차례 질문을 받았지만 정확히 답을 드린 적이 없다”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거나 혼란을 주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정해 놓은 게 없다. 글러브를 벗는 그날까지는 선수로서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바로 나다. (은퇴 선언을 했지만) 여전히 나는 550세이브에 도전 중”이라고 강조했다.

돌부처, 끝판대장 등 실력 만큼이나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뛴 건 뛰어난 구위 못지않게 특유의 무표정이 주목 받은 결과다. 과연 가슴속도 표정만큼 평온했을까. 끝내기 안타를 내주고 패배의 멍에를 뒤집어 쓴 투수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오승환은 “내가 마운드에서 애써 표정을 감춰 온 걸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했다.

관련해 “내가 선택한 구종과 위치로 전력을 다해 던진 공이 끝내기 안타로 이어졌다면 후회도 아쉬움도 의미가 없다”고 언급한 그는 “맞대결한 타자도 그 순간 나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걸고 승부한 것 아닌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겸허히 받아들이고 존중하되, 같은 상황을 다시 겪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섯 가지 키워드로 살펴본 오승환의 진심

오승환은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의미 있는 기록을 줄줄이 작성했다. KBO리그에서 통산 최다 세이브(427개), 포스트시즌 최다 세이브(13개), 한국시리즈 최다 세이브(11개), 역대 최고령 세이브(42세42일·2024년 8월11일) 등 값진 기록을 썼다. 한·미·일 프로야구를 두루 거치며 작성한 549세이브(한국 427개, 일본 80개, 미국 42개)는 아시아인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5개의 키워드를 제시하고 설명을 요청했다. 질문 하나하나를 심각한 표정으로 경청한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변을 내놓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진심에 가깝지 않겠느냐”면서다.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하며 질문에 답한 그는 “짦게나마 내 야구인생을 한꺼번에 되짚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①삼성 라이온즈

“야구선수 오승환을 있게 만든 팀이죠. 오승환이라는 선수가 팬들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게, 세이브를 가장 많이 할 수 있게 도와준 팀이니까요. 2005년에 프로에 데뷔한 이후로 제 인생에서 삼성이라는 팀을 떼어놓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해외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②9회말 2사 만루

“단어만 들어도 힘드네요. 그간 겪은 비슷한 상황들이 저절로 떠오르고요. 다시 생각해도 여전히 힘들어요.”

③영구결번(등번호 21번)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삼성 라이온즈를 빛낸 전설적인 선배들이 누린 영예를 투수 최초로, 그것도 선발투수가 아닌 마무리투수가 함께 하게 돼 영광스럽습니다.”

④549(통산 세이브)

“현재진행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누가 뭐래도 저에겐 ‘아직 끝나지 않은 숫자’입니다. 그렇게 믿으면서 오늘을, 또 내일을 준비할 겁니다.”

⑤야구

“이제까지의 저에겐 그냥 모든 것이었습니다. 살아온 인생의 모든 하루하루를 공을 던지는 것 하나만 보고 살아왔으니까요. 아침에 눈을 뜨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경기를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모든 과정이 ‘내 모든 걸 걸고 주어진 1이닝을 책임진다’는 것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저에게 야구가 어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변함없이 저를 집중하게 하고 행복하게 해줄 것 같습니다”

현역 시절 내내 수많은 영광의 순간을 경험했지만, 잊지 못할 실패의 기억도 존재한다. 가슴 속에 응어리처럼 남은 딱 한 장면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더니 잠시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4년 전 도쿄올림픽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한국은 결승 진출에 실패한 뒤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6-10으로 패해 메달을 목에 걸지 못 했다. 6-5로 앞서다 8회 5실점하며 역전을 허용했는데, 마운드에 오승환이 있었다.

“올림픽은 태극마크의 무게감을 느끼며 뛰는 중요한 대회인 동시에 후배 선수들에겐 병역 혜택(올림픽은 동메달 이상)이 걸린 무대이기도 하다”고 운을 뗀 그는 “나는 어릴 때 훌륭한 선배들과 함께 뛴 덕분에 혜택을 받았는데, 후배들에게 같은 기회를 만들어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그 순간만큼은 ‘똑같은 한 경기’로 여기고 마음을 비울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과 미국, 일본 무대를 두루 거치는 동안 오승환의 든든한 지지대는 팬들의 사랑이었다. 기억에 남는 팬이 있는지 물었더니 “특별한 기억을 공유한 팬이 많은데, 그중에 고교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가 먼저 떠오른다”면서 “중식당 셰프인데,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시절 ‘한국 음식이 그립다’고 했더니 미국까지 날아와 얼큰한 짬뽕을 끓여줬다”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먼 곳까지 와준 것만도 고마운데 ‘맛을 제대로 내야 한다’며 도구와 음식 재료까지 모두 싸들고 와 깜짝 놀랐다”고 당시를 되새긴 그는 “온갖 좋은 보양식을 먹어봤지만, 그때 그 맛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친한 친구라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 했는데, 뒤늦게나마 너무 고마웠다고, 큰 힘이 됐다고 인사하고 싶다”고 했다.

오랜 기간 삼성의 간판스타이자 핵심 인물이었지만 동료들과 후배들 앞에 서거나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스스로 리더라 여긴 적도, 그렇게 행동한 적도 없다. 나이와 실력에 상관없이 프로 무대를 함께 하는 동반자로서 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오승환은 “선배니까, 잘 던졌으니까 내 말이 무조건 정답이라 여기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모두가 프로 무대에 올라오기까지 힘든 과정을 거쳐 각자의 생존 해법을 찾은 선수들이다. ‘정답’이란 건 프로야구 선수 숫자만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그가 ‘제2의 오승환’을 꿈꾸는 어린 후배들에게 남겨주고픈 단 하나의 키워드는 ‘꾸준함’이다. 작은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생각과 행동, 루틴까지도 일정하게 유지하라는 게 KBO리그를 빛낸 레전드의 조언이다. 오승환은 “루틴을 예로 들면, 잘 될 때는 꾸준히 유지하다가 실수하거나 슬럼프에 빠지면 곧장 다른 루틴을 찾아 헤매는 선수들이 많다”면서 “시즌 중에는 경기력에 방해가 되는 다른 행동을 하지 말고, 오직 야구만 생각하며 야구에 도움 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 그 자체가 루틴이어야 한다. 루틴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지배해야 위기 상황을 능동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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