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 장점 있지만… ‘낭비’ 줄이는 것도 필요
‘흑백요리사’ 재료 낭비 논란에 “제작진 나눠가지고 최대한 냉장 보관” 해명
영화나 드라마에서 CG 사용이 활발해졌지만, 그럼에도 ‘오프라인 세트장’은 여전히 ‘필수’다. CG는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을 만들어 내는 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거대한 세트장을 통해 시청자는 물론, 출연자들도 깊게 몰입해 연기를 하곤 한다.
물론 이러한 세트장 때문에 환경폐기물 등의 문제도 제기된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규모이길래 환경폐기물 처리를 고민해야 할 정도일까”라는 의문도 따라붙는다. 세계관이 커질수록 세트장은 더 거대해졌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2’의 세트장은 500여 명의 인원이 들어가도 ‘거뜬’할 정도이며, 넷플릭스 예능 ‘데블스 플랜2’는 1000평 규모의 세트장에서 참가자들이 게임에 임했었다.
◆ 더 크게 더 거대하게…세트장이 ‘킬러콘텐츠’다
‘잘’ 만든 세트장의 ‘장점’은 크다. 미로 같은 분홍색 계단과 LED 조명으로 표현된 ‘O’, ‘X’가 눈에 띄는 숙소를 보여준 ‘오징어 게임’ 세트장은 이 시리즈만의, ‘동화 같지만,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단번에 느끼게 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초 공개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의 세트장 풍경으로, 대전 엑스포 공원 내 스튜디오 큐브에 지어져 미로동만 120평, 숙소는 400평으로 500여 명이 들어와도 될 만큼 그 규모가 컸다. ‘오징어 게임2’의 미술을 맡은 채경선 감독은 “통로가 하나씩 더 추가가 되고, 높이도 11m 정도로 올려서 시즌1보다는 더 규모감이 있는 디자인으로 설계했다. 전체적인 평수는 95평에서 3, 40평을 더 올려 작업을 해서 지금 한 120평 정도의 세트 규모로 작업했다”며 “시즌2에선 다양한 캐릭터들이 많이 나온다. 갈등, 다양한 입체적인 감정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미로 복도의 통로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거기에서 오는 어떤 갈등과 대립과 사건들이 펼쳐지게 될 것 같다. 여기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이다음에 어떤 공간들을 통과하면서 올라가는지, 그 지점까지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알록달록한 게임장 안에서, 피 튀기는 경쟁의 섬뜩함을 더욱 부각했던 ‘오징어 게임’ 시리즈는 세트장의 중요성을 실감케 한 작품이었다. 채 감독의 설명처럼, ‘분위기 구축’은 물론, ‘메시지’까지 담아내며 재미와 볼거리, 의미까지 모두 잡은 작품이 된 것이다.
1940년대 경성을 재현하기 위해 4500여 평 규모의 세트장을 지은 넷플릭스 ‘경성크리처’는 가로등 간판 전봇대 등을 모두 실제 크기로 만들며 현실감을 높였다. 약 7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만큼, 화려하면서도 실감 나는 재현으로 시대물의 매력을 구현했다. 출연 배우 김해숙 또한 “처음 금옥당에 들어섰을 때 생생함에 입이 벌어졌다”며 “그동안 시대극을 많이 찍었는데, 이런 세트장은 처음이었다”고 감탄을 표했으며, 내용의 호불호에도 불구 ‘그 시절 경성 거리가 화면 위에 그대로 펼쳐진 것 같다’며 ‘비주얼’만큼은 합격점을 받았었다.
이러한 세트장 구축에 투입된 비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한 방송 관계자는 “일일 드라마의 방 한 칸을 구현하는 데에도 1000만원 이상이 든다. 사극이나 메디컬 드라마처럼, 구현이 힘든 장르의 경우엔 수십억이 투입된다. 100억을 넘긴 사례도 있다. 앞서 언급된 작품들은 최고 수준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들도 세트장의 규모와 디테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정종연 PD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데블스 플랜2’의 세트장을 공개하며 “시즌 1때는 스튜디오가 600평짜리 스튜디오를 빌려서 했는데, 그땐 인원을 모두 수용하기가 힘들어 어느 방에 가려고 하면 산 넘고 물 건너서 피해 가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1000평이다. 이 세트장을 짓는데 한 8주 정도 걸린 것 같고, 기획 자체는 6~7개월 정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데블스 플랜’ 시리즈는 12명의 참가자가 외부와 고립된 세트장에서 6박 7일 동안 합숙을 하며, 게임을 통해 최종 우승자 1명을 가려내는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집 같은 분위기의 생활동과 수도원 콘셉트의 게임동, 그리고 게임의 긴장감을 배가하는 감옥까지. 시청자들이 ‘데블스 플랜’ 시리즈만의 세계관에 푹 빠질 수 있었던 배경엔, 이렇듯 큰 규모의, 실감 나는 세트장이 필수였던 것. 정 PD는 세트에 공을 들인 이유에 대해 “출연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에 많이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100인이 펼치는 서바이벌 게임 예능 ‘피지컬: 100 시즌2’는 경기장의 규모만 축구장 2개 이상이었으며, 최근 글로벌 인기를 누린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40명이 동시 조리가 가능한 1000평 규모의 스케일로 시청자들을 만났다. 서바이벌의 규모를 키워 압도적인 느낌을 주거나,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켜 신선한 재미를 주는 것이 OTT 예능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 세트장 수요 늘수록 낭비 줄이자는 목소리도 커져
주로 영화, 드라마의 촬영장으로 활용되는 전국 야외 및 실내 세트장은 30곳 내외라고 알려졌다. 최근 서울 근교에는 ‘세트장’ 수요가 증가한다는 점을 겨냥한 스튜디오도 새롭게 생겨났다. ‘흑백요리사’는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스튜디오 유지니아에서 촬영이 됐으며, CJ ENM은 2022년 7월 경기 파주시 탄현면에 3만 7407㎡(약 1만 1300평) 규모의 스튜디오 단지를 준공했다. 이 외에도 500평 규모의 운정 연 스튜디오에서도 드라마 ‘퀸메이커’, ‘7인의 탈출’이 촬영됐다.
다만 스케일을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낭비’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철거 비용만 억대에서 수십억 원대가 투입되며,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처럼 ‘음식물 쓰레기’들이 대거 발생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제작진은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비판이 일자 “남는 식자재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3라운드 땐 축산업자, 수산업자분들이 현장에 계셨고, 남은 건 바로 그 자리에서 소분했다”며 “기부 생각도 했지만, 식자재다 보니 전달 과정 중 잘못 전달될 수도 있고 피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분해서 제작진이 나눠 가졌다. 남는 식자재가 없게끔 했다. 남는 요리는 현장에서 누군가 먹으면 ‘쟤는 먹었네 뭐네’ 하면서 진행이 안 된다. 그래서 폐기 처분했고, 나머지는 최대한 냉장 보관했다”고 해명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