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혁신을 위한 거버넌스

2025-01-01

지난달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 랄리와 그 이웃 도시 더럼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6년 전에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예전에 한적한 시골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성장하는 혁신지역의 느낌이 왔다. 물론 미국에는 이보다 앞선 혁신지역들이 많다. IT변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실리콘밸리, 오래전부터 IT 혁신지역이었으며 요즘 테슬라 같은 글로벌기업들의 본사가 이전해 들어가고 있는 오스틴 일대, 가장 앞선 바이오 혁신지역인 보스턴 일대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혁신지역의 두 가지 필수요소는 연구개발과 기업가다. 혁신지역은 예외 없이 대학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샌프란시스코 일대에는 스탠퍼드와 버클리 등이 있다. 오스틴에는 텍사스대학교가 있고, 보스턴 일대에는 하버드, MIT 등이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세 도시 갈리, 더럼, 채펄힐을 잇는 혁신지역은 오래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연구 삼각지라 불려왔다. 랠리에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NSU)가 있고, 더럼에 듀크대학교, 채플힐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UNC)가 있기 때문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연구 삼각지가 다른 혁신지역과 비교하여 불리한 여건 한 가지는 대도시가 없어서 좋은 인력, 특히 젊은 기업가들을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스캐롤라이나 연구삼각지가 최근 들어 눈에 뛰게 도약하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리더십과 거버넌스일 것이다. 지역혁신에 대한 비전을 가진 주지사, 시장, 대학교총장, 혁신기관의 리더들이 오랜 동안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혁신의 실행자는 물론 기업가들이지만, 이들이 대학연구실로부터 기술을 이전받고,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고, 제품을 개발하여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혁신생태계를 만드는 데는 지역리더들의 역할이 크다.

필자는 3-4년전부터 주로 고향에서 지내고 있다. 지인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혁신에 관련된 일이면 흔쾌히 응해왔다. 그런데 돕는 사람의 눈으로 지역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양에 차지 않을 때가 많다. 쓴소리를 좀 하자면, 능력은 있는데 일을 하지 않는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될 일들이 많은데, 문제해결에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본질적으로 리더십과 거버넌스의 문제다. 그동안 지역의 리더들은 일하는 문화를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지역혁신의 시대가 되었다. 중앙정부가 배정하고 관리하던 연구개발예산 일부가 지역으로 내려오고 있다.지역리더들이 이를 지역혁신을 위해 활용하라는 취지다.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데 기회를 활용하는 데 필요한 변화가 보이지는 않는다. 작년과 올해 진행된 RIS 등 지역혁신사업들은 혁신경쟁력과 상관없는 기관 및 기업보조사업처럼 운용되었다. 최근 지역에 비전과 능력을 가진 리더들이 나타났지만,리더들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함께 일하는 팀이 있어야 한다.

역량있는 사람들을 키우려면, 해결되어야 할 게 많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도록 하는 길밖에 없다.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일을 해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동안 해오던 일 말고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규정에 어긋난다, 관행에 어긋난다’고 하며 회피한다. 새로운 일을 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을 리 없고,비합리적인 규정이 있으면 바꾸면 된다.관행에 어긋나는 건 당연하다. 관행을 바꾸자는 거니까.

지역리더들은 일하는 문화, 문제해결하는 팀을 만들어야 한다. 연구개발을 지역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혁신역량을 키워야 한다.

채수찬 <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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