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헤어졌던 형제가 오랜 세월이 흘러 전쟁터에서 마주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색의 군복을 입은 이들은 필사적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눈앞의 적이 실은 꿈속에서조차 그리워하던 피붙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집요하고 잔인하게 서로를 노린다.
이런 유의 플롯은 비극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픽션에서 자주 사용되는 클리셰인데, 흥미롭게도 이런 비극적 역설은 우리 몸속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인체 극장에서 일어나는 비극의 주인공은 바로 면역세포다. 면역세포란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균, 바이러스, 암세포 등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세포’이기에, 면역세포는 기본적으로 ‘남을 구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의 ‘남’이란 단순히 내가 아닌 타인을 넘어, 우리 편이 아닌 상대편 진영에 속하는 이들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 편이 누군지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은 모두 단 하나의 수정란에서 기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 과정에서 모습과 기능이 다른 200여가지 세포로 분화된다. 게다가 조직학적으로는 동일한 세포군이라고 하더라도 각각은 유전자 발현 패턴에 따라 그 특성이 달라질 수 있기에, 서브타입까지 다 더하면 우리 몸은 최대 550여가지의 조금씩 다른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면역세포 입장에서는, 이 수백가지에 달하는 피붙이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이들을 진짜 ‘남’들과 구분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면역세포들은 흉선(가슴샘)에서 성숙되는 과정에서 인체의 다른 세포들의 특성을 익힌다.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여권을 이용해 자신의 국적을 증명하듯이, 세포들도 각각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일종의 신분증인 주조직적합복합체(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를 가진다. 먼저 미성숙 면역세포들은 흉선의 피질조직에 풍부하고 다양하게 들어 있는 MHC를 접하면서 우리 몸의 세포가 가지는 MHC를 기억한다. 이때 우리 몸의 MHC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포들이 1차적으로 탈락된다. 기억력 시험을 통과하면 다음은 실전 테스트다.
흉선은 인슐린이나 갑상선호르몬처럼 미성숙 면역세포들에게는 낯설지만, 인체에는 필수적인 물질들을 조금 분비해 면역세포들을 유혹한다.
이때 반응하는 세포들은 가차 없이 탈락이다. 이처럼 면역세포들이 성숙하면서 충분한 자기인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바로 중심면역관용(central immune tolerance)이다. 중심면역관용은 흉선이 발생하는 임신 7주부터 시작되어 사춘기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지다가, 성인이 되면 흉선이 위축되면서 약화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리 몸의 세포들은 조직학적으로 같은 세포이더라도 살면서 접하는 다양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일부 다른 특성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중심면역관용 테스트만으로는 이런 변수까지는 미리 대처할 수 없기에 이는 자칫 자가면역의 오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이 ‘말초면역관용(peripheral immune tolerance)’이다.
몸 곳곳에 퍼져 있는 림프절이나 조직 내 수지상세포들이 새롭게 만들어진 물질을 이용해 면역세포들을 지속적으로 테스트하는 것이다.
중심면역관용이 아군과 적군의 기본적 특성을 익혀 구분하는 것이라면, 말초면역관용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다치거나 늙거나 변한 이들까지도 세심히 살펴 이를 익히게 하는 것에 가깝다.
지난 10월 초, 노벨위원회는 말초면역관용의 원리를 규명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메리 브렁코와 프레드 램즈델, 사카구치 시몬을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이들의 연구가 자가면역질환의 치료 및 면역항암제 등의 개발에 기여한 바가 컸기에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면역세포들이 관용을 익히는 과정이 눈에 들어온다. 학창 시절에 제대로 교육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지식과 정보와 사실을 꾸준히 공부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다가와서 말이다. 오늘 수능을 보는 학생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일이지만, 공부는 평생 지속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좋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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