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AI·반도체 투자’ 명분 내세운 규제 완화에 흔들리는 공정거래법

2025-11-13

정부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손자회사 지분 보유 제한을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유력 검토 중이다. 지주사의 사모펀드 운용사 소유를 AI 업종에 한해 허용하는 방안도 함께 거론된다. 전세계 AI·반도체 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 재원 마련할 방법으로 금산분리와 함께 지주사의 지분 규제 완화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순환출자 문제가 새롭게 불거질 수 있고 특정 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공정거래위원회는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금산분리 원칙과 지분 제한 등 주요 규제의 완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와의 회동에서 AI 분야에 한해 금산분리 등 일부 규제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관계부처가 유력 검토하는 방안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 지분 보유 제한을 일부 완화하는 방안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해야만 소유를 인정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개최한 간담회에선 지분 규제 완화가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으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예컨대 손자회사가 증손회사의 지분 50%만 보유하더라도 소유를 인정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지주사 산하에 있는 회사가 스타트업 등 기술 유망 회사에 투자할 때 지분보유 부담이 줄어 투자를 더 할 여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한 특별법을 통해 AI 등 첨단산업에 한해 금산분리 예외를 허용하는 방안도 들여다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공정거래법상 일반 지주회사가 소유할 수 없었던 사모펀드 운용사 지배를 예외로 인정하고, 이 운용사가 외부 투자자로부터 반도체 투자자금을 모집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를 대규모 투자를 위한 방책이라고는 하더라도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으로 이어져 경쟁을 제한하고 시장 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산분리를 체제를 흔들어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순환출자 문제가 새롭게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지분규제 완화와 금산분리 예외 허용 등의 정책으로 지주회사 체제인 SK가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K 지주회사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가 증손회사를 보유하라면 100% 지분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에서 벗어나 지분 전부를 사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지는 셈이다. 또한 사모펀드를 보유할 수 있게 되면 ‘SK하이닉스→사모펀드 운용사→사모펀드→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신규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정거래법은 소수 지배주주가 적은 자본으로 여러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있다.

현재 논의 중인 방안들은 모두 공정거래법과 금산분리 관련 법의 근간을 흔드는 사안인 만큼, 주병기 공정위원장도 규제 완화에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부 내에서는 AI 투자 확대를 이유로 규제 완화 공감대가 큰 만큼, 이러한 입장이 끝까지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주사 체제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를 내놨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산업육성을 명분으로 규제를 풀면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어 바람직 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도 “AI 투자 확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특정 재벌 맞춤형 규제 완화 요구”라며 “정부가 재계의 민원만으로 섣불리 규제 완화를 검토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