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안경봉 국민대 법대 교수) 2024년 세법 개정안은 경제 활성화와 조세 정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로,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뜨거웠다. 지난 12월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24년 세법개정안은 총 13개였는데, 그 중 부가가치세법, 조세특례제한법은 정부안이 수정 가결되고,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정부안이 부결되었다.
상속세 과세 체계 개편 및 가업승계 활성화가 핵심이었던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정부개정안은 부결된 반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의 쟁점이 있었던 소득세법 개정안은 원안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또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세제지원 확대, 주주환원 촉진세제 도입, 통합고용세액공제 지원방식 개편, 전자신고세액공제 축소 등의 쟁점을 가진 조세특례제한법은 삭제 혹은 현행 유지하는 것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결론이 났다.
이번 논의의 중심에 섰던 세제 관련 사안들은 단순히 세제 개편 문제를 넘어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왜 세법은 매번 정쟁의 중심에 서게 되는가? 이 질문은 정치와 세금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세법 개정 논의의 주요 쟁점
이번 정기국회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사안 중 하나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였다. 이는 원래 투자자들이 금융소득 전반에 대해 공평한 과세를 받도록 하기 위해 2020년 도입되어 2023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도입 직후 2022년부터 경기 침체와 투자 심리 위축을 이유로 폐지 논의가 급부상했다.
폐지가 단기적으로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줄 수는 있지만, 조세 형평성 측면에서 소득 규모에 따른 과세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고, 폐지로 인한 세수손실(연간 약 4조원 추산)이 예상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이후의 대체 입법은 시장 활성화와 세수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균형 있게 달성할 수 있도록 투자자와 정부간 이해관계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이번 논의의 중심에 있었던 또 다른 중요한 쟁점이다. 상속세 과세체계 개편을 위해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전환하고, 최고세율 인하, 기본공제 확대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가업상속공제의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하거나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고액 자산가들이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확대된 자녀공제(5천만원→5억원)의 활용, 생명보험상품의 활용(예컨대, 보험 계약자와 수익자를 자녀로 설정하고, 자녀가 보험료를 실질적으로 납부하도록 하는 방식의 활용), 자산의 해외이전, 부동산 및 비상장주식의 감정평가 및 증여세신고시기의 적절한 선택 등을 통해 세법의 허점을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논의를 넘어 사회적 형평성과 공정성의 문제로 연결되었다.
가상자산 소득세 과세 유예는 비교적 새로운 과세 분야로, 기술 발전과 규제 환경 변화 속에서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다. 가상자산 거래에 대한 소득세 과세는 당초 2022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업계와 투자자들의 준비 부족과 제도 미비를 이유로 2025년 1월로 유예되었으나, 2027년 1월로 다시 2년 유예가 결정되었다.
가상자산 거래에 대한 소득세 과세는 기존의 조세 체계가 다루기 힘든 새로운 유형의 자산을 대상으로 하므로 제도적, 기술적, 그리고 국제적 조정이 필요하며, 특히 청년층이 주요 투자자라는 점에서 정치적 함의가 컸다. 유예 조치로 인해 과세 기반 확충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새로운 세제를 설계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치적 맥락에서의 세금 논의
이번 세법 개정 논의는 여야의 정치적 셈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場)이었다. 여당은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과세를 유예하거나 폐지하려는 방향을 강조했으며, 야당은 조세 정의와 재정 건전성을 앞세워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대립은 세법 개정이 단순한 정책 결정이 아니라 정치적 타협의 산물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대통령 중심제 아래 정부 여당과 야당의 대립 구도, 국회내 조세정책 전문기구의 한계 등 국회의 정책역량 미흡 등의 이유로 조세정책의 주도권을 행정부가 행사하여 왔으나, 최근 들어 조세정책에 국회의 주도권이 증대되고 있으며 특히 여소야대의 국회 정치 지형으로 이런 경향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2022년 12월 21일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중과를 완화한다고 발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23년 1월 국회가 정부 입법안에 대한 심의를 보류함으로써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중과 완화를 위한 입법이 끝내 완료되지 못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논의가 국민에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느냐다.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중과 완화를 위한 입법이 완료되지 못함으로 인해 중소도시의 부동산시장 활성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세금 정책은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넘어 국민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깊이 있는 논의와 장기적인 시각에 기초한 입법이 필수적임에도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결론: 합리적인 세제개편을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
이번 정기국회에서 논의된 세법 개정안들은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려는 시도였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도 많다. 앞으로는 단기적 이익을 넘어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세제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조세제도를 개편하려면 소유권, 리더십, 일관된 전략, 좋은 아이디어와 이의 효과적인 구현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 정치적 성향을 갖는 세제 개편(예를 들면 세율인상 등 이념적이고 정치성이 있는 세제 개편)과 통상적이고 기술적인 세제개편(예를 들면 조세 절차 등 실무적인 제도 개선)을 분리하여, 전자에 관해서는 집권당의 공과를 다음 선거과정에서 평가받는 과정에서 함께 평가받도록 하는 것도 한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대통령 중심제 아래 정부 여당과 야당의 대립 구도로 인해 합리적 세제개편이 힘든 상황이라면 대안으로 국회내 중립적인 위치에서 여야간 정파적 대립에서 자유롭게 객관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합리적인 조세정책 대안을 마련하고 제시할 수 있는 기구(예컨대, 미국의 CBO(Congressional Budget Office), 네덜란드의 CPB(Central Planbureau), 영국의 OBR(Office for Budget Responsibility). 이들 기관들은 국제적 비교와 중장기 경제전망에 큰 비중을 두고 있어 한국의 NABO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의 설치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프로필] 안경봉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현) 금융조세포럼 수석부회장
•(전) 한국국제조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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