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곳이 베네수엘라는 아니다

2026-01-05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구축해 왔던 세계 질서는 트럼프 시대에 분명히 상전벽해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것이 그 이전 1930년대로의 회귀인지 아니면 전대미문의 새로운 질서의 출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권국가도 현재의 국제 제도도 불변의 것들이 아니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떠오르고 사라지는 것들일 뿐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권에 의한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부부 납치 사건으로 국내외 여론의 충격이 크다. ‘국제법의 종말’을 넘어서 ‘주권국가의 종말’과 ‘강대국 독주 시대’가 이야기되며, 급기야 일부에서는 ‘여러 강대국 세력권이 할거하는 세계 질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의미와 파장을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권국가라는 국제 질서가 나타난 것은 그다지 오래전의 일이 아니며, 그것을 낳았던 지정학적 구조가 변화하면서 그러한 질서가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오래된 일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에서 새롭게 나타난 변화가 무엇인지는 이러한 역사적 추세를 감안해 차분하게 걸러내 보아야 한다.

주권국가 체제가 몇백년 전 웨스트팔리아 조약으로 시작되었다는 통념은 한마디로 잘못이다. 주권은 국제법이나 조약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폭력으로 뒷받침되는 실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주권국가로 인정받는 나라들은 실로 몇 되지 않았고, 식민지나 반식민지가 아니라고 해도 그러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들은 관세와 치외법권 등 각종 부당한 침탈에 시달리는 것이 당연시되는 질서였다. 일본조차도 러일전쟁으로 강대국임을 힘으로 입증한 뒤에야 여러 불평등조약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주권국가라는 국제 질서가 하나의 정상적 규범으로 자리 잡은 것은 양차 대전이 끝나고 유엔이 출범한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미국으로서는 유럽의 구제국 해체의 달성 그리고 공산주의 확산의 위협이라는 지정학적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독립을 원하는 거의 모든 나라들에 주권국가 그것도 유엔에 명시된 대로 ‘평등한’ 주권국가라는 타이틀을 선사해야만 했다. 이제 어떤 나라가 과연 자기 스스로의 주권을 입증할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라는 테스트는 사라지게 되었고, 51개국으로 시작한 유엔 회원국은 순식간에 160개국 이상으로 폭증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미국에 의한 “주권의 바겐세일”이라는 냉소적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소련의 해체와 맞물린 미국의 단극적 세계 질서가 나타나면서 이러한 “바겐세일”은 끝나고 실질적인 주권의 회수가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세계 경제질서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로 재편되면서 경제주권이라는 말은 시대착오적인 잠꼬대 취급을 받게 되었다. 서방 세계가 표방하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크게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국가들은 주권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며, 심지어 무력적 개입의 철퇴까지 맞게 되었다. 이른바 지구적 통치(global governance) 체제가 나타났으며, 이제 주권이라는 개념에는 수많은 제한이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5년에는 유엔 정상회의에서 이른바 “보호할 책임”이라는 것이 명시적으로 선언되기에 이른다. 어떤 나라라고 해도 반인륜적인 행위가 벌어지는 것을 방기하거나 조장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개입이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무력적 개입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국제법 무시와 일방독주는 새 변화

예측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러한 국제사회의 개입은 미국과 다른 강대국들의 이해와 관심에 따라 선별적으로 작동했다. 이라크 전쟁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대량살상무기’라는 것을 명분으로 해 유엔의 승인조차 얻지 못한 상태에서 일사천리로 벌어졌고 급기야 사담 후세인의 처형과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라크의 정치·사회 체제의 급진적 변혁까지 초래했다. 인륜적인 가치에 입각한다면 마땅히 개입해야 할 수많은 비극은 그대로 방치되면서도, 강대국의 필요가 있다면 한 나라의 주권이라는 것이 그 이름에 걸맞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전락한 것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트럼프 정부는 절차적 정당성의 근원이 되는 지구적 통치의 기존 질서 자체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냉소를 표해왔다. 어쩌면 이들은 사담 후세인 제거와 이라크 체제 변화를 위해 미국이 장시간에 걸쳐 쏟아부었던 엄청난 노력과 인적·물적 비용에 비해 이번 작전이 얼마나 더 효율적이고 확실한지를 자랑스럽게 여길지도 모른다. 이러한 국제법 질서의 무시와 일방적 독주는 앞에서 이야기한, 장시간에 걸친 주권국가 체제의 쇠퇴와는 별개의 새로운 변화임에 틀림이 없다. 이라크전을 벌였던 조지 W 부시 정권만 해도 영국과 토니 블레어 총리의 절대적인 지지를 반드시 필요로 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조차 아랑곳없이 일방적인 행동을 얼마든지 벌일 수 있다는 것을 공표한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큰 의미가 있다. 국제 정치에서 국제법 등 여러 제도는 여러 나라와 각각의 행위자가 어떤 수순으로 어떤 방향으로 행동을 밟아나갈지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만드는 중대한 기능을 한다. 그에 따라 다른 행위자들이 벌이는 대응의 행동 또한 그에 맞춰 일정한 수순과 방향을 수렴하게 만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상황 전체에 예측 가능성을 가져오게 되며, 자칫하면 일촉즉발의 전면적 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국제 정치에 일정한 질서를 부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이 보여준 충격적인 행동은 그러한 일방적 행동의 태도를 다른 강대국들에도 확산시킬 것이며, 이는 다시 여러 국제 제도를 형해화해 결국 그나마의 예측 가능성조차 사라진 혼돈과 암흑의 세계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시대가 어디로 가는지 알기 힘들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대국들이 각자의 영역 안에서 마구 독주하며 보다 힘이 약한 나라들을 향해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에 준하는 일방적 주권 침탈을 벌이는 세계까지 상상하는 것은 과도한 우려이다. 국제 관계는 힘의 진공 상태가 아니며, 국제법과 제도가 무력화된다는 것이 곧 무정부 상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모든 지역은 여러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맞물려 있으므로 설령 국제법이나 제도가 아니라고 해도 그 어떤 강대국이라고 해도 일방적인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베네수엘라 또한 중국이 60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러시아가 무기를 수출하는 등 이해관계가 존재하지만 이는 중남미를 자신들의 ‘뒷마당’으로 여겨온 미국의 행보를 제약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대만과 북한을 위시해 지구상의 어느 민감 지역이라고 해도 미국뿐만 아니라 그 밖의 어떤 다른 강대국도 이번과 같은 일방적 행동을 벌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트럼프 정부가 유엔 등 미국이 역사적으로 구축하고 지지해온 기존의 국제 제도를 무시한다고 해서, 이런 지역에서까지 마음대로 행동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대신 기존의 관행이나 가치 등을 무시한 상태에서 다른 강대국들과의 양자 간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파격적인 결과가 나오면서 불확실성은 커질 수 있겠지만, 이는 강대국들의 전횡이 아무 제약 없이 벌어지는 세계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문제이다. 따지고 보면, 본래 주권이란 국제법과 제도의 산물이 아니라 힘의 균형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구축해왔던 세계 질서는 트럼프 시대에 분명히 상전벽해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것이 그 이전 1930년대로의 회귀인지 아니면 더 옛날인 19세기로의 회귀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전대미문의 새로운 질서의 출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상식으로 삼고 있는 개념과 생각들이 어떠한 상황과 조건의 산물이었으며 그러한 상황과 조건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계속 따져보아야 한다. 주권국가도 현재의 기존 국제 제도도 불변의 것들이 아니며, 그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떠오르고 사라지는 것들일 뿐이다. 트럼프는 한 걸음 나아가 최대 마약 생산국으로 지목된 콜롬비아가 그다음 목표물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존의 국제 질서 수호 입장을 견지해왔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를 두고 미국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며 놀라울 정도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밥 딜런은 “일기예보자가 없어도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는 알 수 있다”고 노래한 적이 있다. 시대가 어디로 가는지는 마음으로 알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람의 향방은 고사하고 누가 일기예보자인지조차 알기 힘든 상황인지도 모른다.

▲홍기빈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대안적 사회의 정치경제 질서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와 활동을 병행해 왔다. 저서로는 <위기 이후의 경제학> <비그포르스, 잠정적 유토피아와 복지국가>가 있으며, 역서로는 <도넛 경제학> <21세기 기본소득> <균형재정은 틀렸다: 현대화폐이론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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