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의 대회를 경험했습니다. 점점 적응하고 성장하는 게 느껴져 만족합니다.”
LIV 골프 싱가포르 대회(14~16일)를 앞두고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 클럽에서 만난 장유빈(23)은 여유가 넘쳤다. 인터뷰 내내 “재밌게 치고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미리 준비한 의례적 얘기라면 표정이나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인데, LIV 골프와 동료, 대회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얼굴에는 자연스런 미소가 번졌다.
장유빈은 자타공인 한국 남자 골프 최고 기대주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널리 이름을 알렸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무대에선 처음 풀타임을 소화한 지난해 전관왕에 올랐다. 상금(11억2904만7083원), 최저타수(69.4), 다승(2승), 톱10 피니쉬(11회), 장타(311.3야드)에 제네시스 대상까지 휩쓸며 투어를 평정했다.

‘드라마’ 요소도 겸비했다. 그에겐 수려한 말솜씨와 쾌활한 성격, 화끈한 세리머니 등 팬을 사로잡는 매력 포인트가 즐비하다. 여기에 손자의 성공을 위해 10여 년 간 운전대를 잡고 함께 전국을 누빈 할머니(차화자 씨) 스토리가 더해졌다. 팬들이 장유빈을 ‘육각형 플레이어’(여러 가지 장점을 갖춘 선수)로 부르며 열광하는 이유다.
그런 장유빈이 지난해 말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진출을 준비하다 LIV 골프로 진로를 급선회하자 팬들 반응이 엇갈렸다. ‘PGA 투어를 평정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다’는 의견과 ‘세계적인 선수들 사이에서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교차했다.

“LIV 골프에 참여한 이후 100% 만족한다”고 강조한 장유빈은 “여기선 팀(아이언헤드)에 소속돼 개인전과 팀전을 병행하는데, 팀의 막내다 보니 아무래도 형들 도움을 받는 부분이 많다”며 “궂은일은 케빈(나) 형이 도맡아서 처리해준다. 좋은 리더를 만나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LIV 골프는 기존 골프 대회의 룰을 줄줄이 깼다. 54명의 선수가 컷 탈락 없이 3라운드 54홀 결과로 순위를 가린다. 샷건 방식(모든 조가 각 홀에서 동시 티오프)을 적용하고, 모든 홀에서 신나는 음악과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진다. 침묵이 미덕인 여느 골프 대회와 달리 줄곧 떠들썩하고 흥겹다.
낯선 환경에 대해 장유빈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LIV 골프에 합류한 뒤 세 번의 대회를 치렀는데, 아직 톱 10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49→ 23→40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는 “LIV 골프만의 독특한 환경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돌며 대회를 치르다보니 시차에도 적응을 해야 한다. 처음인 게 너무나 많다”며 “매 대회 성적과 경기력에 업과 다운이 있지만, 이런 경험이 더 큰 선수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의 시선은 5월에 맞춰져 있다. 지난 2022년 출범한 LIV 골프가 사상 처음으로 한국(잭 니클라우스 골프 클럽, 5월 2~4일)에서 대회를 열기 때문이다. LIV 골프의 유일한 한국 국적 선수인 그는 “아이언헤드는 한국계 선수가 주축인 팀이다. 우리 모두에게 한국 대회를 잘 치르는 게 올 시즌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라며 “좋은 성적을 곁들여 LIV 골프의 매력을 한국 팬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각오를 전했다.
최근 PGA 투어와 LIV 골프의 통합 논의가 골프계의 뜨거운 화두다. 장유빈은 “논의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라 아직 조심스럽지만, PGA 투어에도 골프 선수라면 한 번쯤 꿈꿔본 대회가 여럿 있지 않나”라며 “(통합이 성사돼) 출전 기회의 폭이 넓어진다면 더 행복할 것 같다. 그 순간을 대비해 경험과 기량을 쌓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