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거장들이 전성기에 연출했던 옛 영화들의 재개봉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해외 예술 영화가 의외의 흥행호조를 보이는 사례가 잇따르면서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에밀리아 페레즈>의 감독인 자크 오디아르의 2009년작 <예언자>는 지난 2일 재개봉했다. <예언자>는 나약한 10대 범죄자가 감옥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며 거물로 성장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프랑스 출신 오디아르 감독은 <예언자>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이후 <디판>(2015)으로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벨기에 출신 형제 감독인 장피에르·뤼크 다르덴의 2011년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은 오는 16일 메가박스에서 단독 개봉한다. 보육원에서 생활하던 소년이 이웃 여성 사만다를 만나 따뜻한 세상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다르덴 형제는 <로제타>(1999)와 <더 차일드>(2005)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번 받았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1996년작 <크래쉬:디렉터스 컷>은 개봉 당시 삭제된 장면이 포함된 감독판이 지난달 재개봉했다. 차 사고 후 죽음의 문턱에서 극한의 성적 흥분을 느낀 남자가 주인공이다. 1996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으나 당시 심사위원장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영화”라며 시상을 거부한 바 있다. 크로넨버그 감독은 인간의 육체가 파괴되는 모습을 통해 욕망과 정체성, 기술 등을 탐구한 보디 호러물의 창시자로 꼽힌다.
일본의 차세대 거장 미야케 쇼 감독의 2020년 작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도 오는 16일 재개봉한다. 친구와 연인을 오가는 세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청춘 영화다.
외화 수입·배급사들이 거장들의 옛 영화를 다시 내놓는 것은 해외 예술 영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황과 맞물려 있다. 지난해 <괴물>(56만명) <서브스턴스>(56만명), <존 오브 인터레스트>(20만명), <가여운 것들>(15만명), <퍼펙트 데이즈>(14만명), <추락의 해부>(10만명)가 예술 영화로선 흥행 대박에 해당하는 10만 관객을 넘었다. 올해도 ‘콘클라베’(24만명)와 ‘플로우’(12만명) 등이 10만을 넘겼다.
다만 관객 수 하락 등으로 침체된 영화계의 자구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신작 영화가 갈수록 줄고 극장가의 불황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차라리 잘 알려진 작품들을 재개봉해 고정팬이나마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