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가 중남미 지역 난민들에게 미국행을 위한 경유지가 아닌 종착지로 부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강경한 반(反) 이민 정책이 이어지는 가운데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과 멕시코 내 심각한 인력 부족 현상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30일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멕시코에 난민을 신청한 외국인은 14만 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10년 전 수천 명 수준에서 10만 명대로 급증한 것이다. 이들의 국적은 주로 쿠바, 베네수엘라, 온두라스, 아이티, 콜롬비아, 과테말라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멕시코는 중남미 난민들이 미국으로 가기 위해 거쳐 가는 환승국이었다. 그러나 UNHCR이 만든 고용연계 프로그램으로 현지 취업 기회가 많아지면서 멕시코에 정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UNHCR이 2016년부터 시작한 이 사업은 650여 개 기업과 협력해 난민들에게 안정적인 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일자리를 얻은 사람은 3만 5000여 명에 달한다. 온두라스 출신의 호세 페르난도 페르난데스는 갱단의 폭력을 피해 2019년 가족과 함께 멕시코로 왔고, UNHCR을 통해 자동차 부품업체에 취직했다. 그는 “멕시코는 온두라스와 같은 스페인어권이라 적응하기 쉽고, 고용 기회도 많은 편”이라고 정착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멕시코의 올 3월 실업률은 2.2%로 사상 최저를 기록할 만큼 취업 기회가 풍부하다. 인건비가 치솟고 기업 간 인력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용주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일할 사람들을 찾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정착 의지가 강한 난민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추방 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멕시코 내 난민 정착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UNHCR의 아과스칼리엔테스주 사무소장인 파올라 몬로이는 “중남미 사람들이 멕시코를 경유지가 아닌 목적지로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지속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UNHCR은 보고서를 통해 보호소 과밀화와 노숙 증가·여성 대상 폭력 위험·현지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우려했다. 또 올해 예산 1억 1790만 달러 중 85%가 확보되지 않아 안정적인 자금도 시급한 과제로 지목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