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기업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운 제주인

2025-12-05

[공감 제주인 인터뷰] ⑩ 김동훈 엠에스씨 대표이사

컴퓨터 프로그래머에서 ‘반도체 약품 기업가’로 변신

‘행복주식회사’ 목표, 직원 복지 향상위해 많은 노력

비전기업협회장 등 역임…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전개

김동훈 엠에스씨 대표이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에서 출발, 국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반도체 및 전자부품의 표면처리약품 전문기업을 세운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일본 굴지의 대기업에서 잘나가던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그만두고 귀국한 후 2005년 소규모 자본으로 1인 화공약품 기업을 설립, 20년 만에 국내 3개소, 중국 1개소 등 4개의 공장을 운영하며(직원 89명) 400억원대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워낸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회사가 성장하는 만큰 사회공헌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일본 유학길에 오르다

김동훈 대표는 1966년 제주시 노형동 월산마을에서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제주에서 초·중·고 과정을 마친 그는 1987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제주에 여행 온 일본인 관광객을 가이드한 것인 인연이 된 것이다.

김 대표는 “일본에 친척들이 많아 일본어를 조금할 줄 알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수학선생이었던 일본 관광객을 가이드하게 됐다”며 “그때 그분에게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자 보증까지 서주시며 일본 유학에 큰 도움을 주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일본 유학을 가기 위해 막노동을 하며 비행기 삯을 벌었고, 일본가서도 4개월 동안 아르바이트하면서 오사카에 있는 정보처리전문학교 입학금을 마련했다”고 유학 과정에서의 고생담을 털어놓았다.

그는 “전문학교를 다니면서도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한번은 학교로 가던 중 잠이 부족해 지하철역에서 쓰러져 119로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다

김 대표는 전문학교 졸업 후 일본 굴지의 대기업 ‘마츠시타(파나소닉 전신)’에 입사하게 된다.

전문학교의 성적이 1등이었고, 마라톤 선수로도 활동했기 때문에 학교 추천을 받을 것이다.

그는 마츠시타에서 2년 근무하고, 일본 IBM으로 회사를 옮겼다.

“신입사원이었을 때 연수가 끝나고 팀을 배정받았는데 맡은 임무를 5일 동안 밤을 새면서 성공을 시킬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다”는 그는 “일하는 것이 좋아한다”고 했다.

IBM 재직 때는 노무라 증권에 파견돼 슈퍼컴퓨터 운영체계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런데 대기업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그는 돌연 한국으로 귀국했다.

“일본의 대기업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보니 한국에 돌아가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는 생각에 귀국을 결심했다”는 그는 “하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와보니 프로그래머보다 컴퓨터 고치는 사람을 필요로 해서 기대와 달리 할 일이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엠에스씨 설립

김 대표는 귀국 후 마땅히 할 일이 없자 서귀포시 모 학원에서 일어 선생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활이 여의치 않자 고민 끝에 미국의 한 회사와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할 때 화공분야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에서 근무를 하던 형님이 “한국에 도금약품이 없다”며 “공부 한번 해보라”고 권유한 것이다.

그는 ‘미국 가면 못 돌아온다는 생각에 한 번만 더 도전해보자’는 심정으로 형님의 권고를 받아들여 일본어로 된 전문서적을 구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2005년 3000만원의 자본금을 갖고 60평 정도의 창고를 임대, 1인 기업을 만든 것이다.

“각고의 연구와 노력 끝에 개발하는 것마다 성공을 했다”는 그는 “매출액이 1년에 300%씩 성장했다”고 밝혔다. 매출액이 계속 증가하자 회사도 옮기고, 공장도 더 지어야 했다.

엠에스씨는 현재 인천 남동공단에 3300㎥ 규모의 본사와 공장을 비롯 경기도 화성과 중국 청도에 공장을 가동 중이며, 경북 칠곡에도 자회사 ‘디에치테크(DH Tech)’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김 대표는 “이 모든 게 형님이 이끌어준 덕분”이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최고의 기술력으로 승부하다

엠에스씨의 주력 사업인 표면처리는 모든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뿌리산업이라고 한다.

엠에스씨가 2014년 뿌리산업 전문기업으로 선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회사가 국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2015년 반도체 표면처리약품의 국산화에 성공하면서다.

당시 반도체는 우리나라의 핵심산업이었지만 반도체 표면처리약품은 대부분 일본이나 미국에서 수입하던 때였다. 그런데 일본이 2019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한국에 대한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수출 규제를 단행한 것이다.

하지만 엠에스씨는 반도체 표면처리약품 국산화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었고, 전자부품 차폐제 등도 독자 기술로 개발하면서 해외 수출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다.

한편 엠에스씨는 지난해 2월 세계 최대 ESG 평가 기관인 ‘에코바디스(EcoVadis)’에서 실버(상위 15% 이내) 등급도 받았다.

▲엠에스씨 성장 과정

엠에스씨의 성장 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눈부시다.

2005년 창립된 이 회사는 2009년 경영혁신형 중소기업으로서 벤처기업 인증을 받은 후 부설연구소를 설립했다. 이어 2010년 중국 청도공장 건립, 2012년 경북 칠곡에 자회사 설립과 함께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행복한 중소기업 일자리 으뜸 기업’으로 선정됐다.

2013년에는 한양대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단과 ‘산학협력 협약서’를 체결했고, 인하대와는 ‘인하 가족회원증서’를 발급받았다.

2014년에는 대한민국 기술혁신 경영대상(기업부문), 대한민국 경제리더 대상(R&D부문), 뿌리산업 전문기업, 그리고 인천시가 매출액 80억~400억원대의 우수기업들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비전기업으로 지정됐다.

이어 2015년에는 중소기업청의 고성장기업(2015), 2017년에는 국무총리 표창, 인천지방 중소벤처기업청장 표창, 중소기업진흥공단 표창 등을 수상했으며 2018년에는 인천광역시장 표창장, 2019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장관상과 고용노동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행복주식회사’로 가는 길

김 대표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중 역점을 두는 것은 ‘행복주식회사’다.

그는 “1인 기업을 하다가 아르바이트 직원을 한 명 두게 됐는데 그가 ‘행복주식회사’라고 낙서한 것을 보고, 앞으로 회사가 성장하면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아르바이트 직원은 엠에스씨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공장장으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직원들이 일과 생활에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사원들의 학위 및 자격증 취득 지원, 우수사원 인센티브 지급, 근로환경 개선 등 직원 복지 향상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김 대표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인천시 비전기업협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역 기업들의 협력과 발전을 위한 네크워크를 구축하고, 어려운 이웃돕기 돕기, 국가유공자 유가족 지원 활동 등에 앞장서왔다.

김 대표는 또 2021년부터 엠에스씨 직원들과 함께 지역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연탄 나눔 봉사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2023년에는 글로벌 미래 인재 교육 지원금 5000만원을 후원하기도 했다.

서울제주도민회 장학회 이사, 안산시흥 제주도민회 부회장 등도 역임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제주도민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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