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탱크만 즐비했던 SK이노 ‘울산CLX’…亞 최대 에너지기지로 탈바꿈

2025-02-23

SK이노베이션(096770)의 생산 거점인 울산콤플렉스(CLX). 60년 전만 해도 이곳은 해외에서 수입한 정유와 석유화학 제품을 보관하던 저장 탱크들만 즐비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250만 평 규모의 땅에 5개의 정유 공장과 에틸렌·폴리에틸렌 등 석유화학 콤플렉스가 들어서 있다. 단일 공장으로는 아시아 최대다. SK(034730)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1월 액화천연가스(LNG)와 수소,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하는 SK E&S를 흡수하며 자산 111조 원에 달하는 공룡 에너지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유공 인수 당시 빛난 최종현의 ‘석유 외교’=SK이노베이션이 아시아 최대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던 배경에는 에너지 주권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최종현 선대회장의 선견지명이 있다. SK의 에너지 사업 역사는 수차례 석유 파동이 전 세계를 덮친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대회장은 석유 파동 전부터 한국 경제가 발전하려면 안정적인 원유 공급망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1973년 일본 기업들과 국내에 정유 공장 설립을 추진하면서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다졌다. 중동전쟁 여파로 정유 공장 설립이 무산됐지만 선대회장은 불포화 폴리에스테르수지 공장을 짓고 싶다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요청에 흔쾌히 200만 달러를 건넸다. 당장 사업에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아랍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결단이었다.

투자는 1978년 2차 오일 쇼크 때 결실을 맺는다. 당시 국내에는 원유 재고가 10일 치만 남아 SK(선경)도 비상이 걸렸다. 이때 선대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사우디는 즉각 벨기에로 향할 예정이던 5만 배럴의 유조선을 한국으로 돌렸다. SK가 유공을 인수할 수 있던 배경에도 이처럼 안정적으로 원유를 확보할 수 네트워크가 작용했다. 섬유 회사인 SK가 수백 배나 큰 유공을 인수할 때 ‘새우가 고래를 삼킨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일찌감치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돈독히 쌓아온 관계가 빛을 발한 것이다.

◇IMF 때도 통 큰 투자…자원 개발 영토 확장=유공 인수를 마친 최 선대회장은 또 한 번 미래를 준비한다. 1982년 임원 간담회에서 그는 "석유는 공해 문제가 있어 가능한 한 빨리 방향을 바꿔야 한다. 10년 후에는 정유 사업 비율이 낮아질 수 있도록 하자”고 주문했다. 이는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숙원이던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SK이노베이션은 1972년 국내 최초의 석유화학 공장인 나프타분해시설(NCC)을 가동했고 울산 미포 국가산업단지에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파라자일렌(PX) 등 9개 신규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선대회장은 유공 인수 직후인 1982년 자원기획실도 출범시켰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해외에서 직접 유전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유전 개발은 수조 원의 비용이 들지만 성공 가능성이 5~10%에 불과해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임직원 역시 탐사에 성공해도 수익으로 연결되기까지 최소 10년이 걸리는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의구심을 가졌다. 실제 유공은 1983년 인도네시아 카리문 광구 개발에 350만 달러를 투자했지만 실패했다. 1984년에는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광구 개발에 나섰다 쓴맛을 봤다. 계속된 실패로 우려의 목소리는 커졌지만 최 선대회장은 “석유 개발 사업은 1~2년 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실패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며 사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SK는 결국 1984년 7월 북예멘 마리브 광구에서 석유를 발견했다. 16개월 만에 상업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1987년 하루 15만 배럴의 원유 생산을 시작했다. 이어 마리브 유전 개발을 성공하며 한국은 준산유국 대열에 합류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베트남 15-1 탐사 광구와 페루 88광구 참여를 결정하며 투자 기조를 이어갔다.

◇최태원이 실현한 ‘무자원 산유국’의 꿈…AI로 도약=SK이노베이션은 전 세계적으로 정유와 석유화학 산업이 불황을 겪는 가운데 해외 자원 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첨병은 SK어스온. SK어스온은 2021년 SK이노베이션 석유 개발 사업이 물적 분할해 설립된 자원 개발 전문 기업이다. SK어스온이 석유를 생산하는 광구의 자산 가치는 2021년 3151억 원에서 2023년 5149억 원으로 63% 늘었다. 개발 중인 광구의 가치 역시 같은 기간 327억 원에서 1205억 원으로 3.7배 증가했다.

최근 베트남에서 1억 7000만 배럴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규 광구 탐사에도 성공했다. 내년부터 말레이시아 두 개 광구에 대한 탐사 시추를 진행한 뒤 인도네시아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에서 액화천연가스(LNG)와 수소·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하는 SK E&S도 하반기부터 호주 칼디타·바로사 가스전 상업 생산에 돌입해 연 130만 톤의 LNG를 추가 공급한다.

SK이노베이션은 자원 개발 사업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탐사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SK어스온은 산학 협력을 통해 AI 탄성파 탐사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암석 내부 빈 공간의 비율인 공극률 예측 정확도를 높였고 실제 탐사‧개발을 진행 중인 베트남 황금바다사자 광구에도 대입해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SK어스온은 AI 솔루션 개발 업체인 에너자이와 협력해 석유 개발과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분야에서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