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 ‘범죄의 자유’ 도구로 전락한 텔레그램
텔레그램 상용화된 2018년부터 국내 조직범죄 기승 부리기 시작
‘완벽 보안’ 장점을 조직 상선이 악용…하선들 ‘꼬리 자르기’ 쉬워
범죄조직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조직범죄는 텔레그램 사용 전과 후로 나뉜다.
텔레그램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2018년, 그 시기는 국내 범죄 조직의 ‘돈줄’이라고 할 수 있는 불법 도박사이트 사기, 비상장주식 사기, 마약류 유통 등의 범죄가 활개를 치기 시작한 때와 겹친다.
수도권 일대에서 알아주는 한 범죄 조직 ‘상선’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사기 사건에서 피해자를 모집하는 조직원이나 마약류를 운반하는 등의 부류는 하선 중의 하선이다. 예전에는 조직원들이 지시 사항을 전하기 위해 하선들과 대면하는 게 불가피했다고 한다. 보안에 신경 쓴다고 메신저를 써도 사용자 기록이 남기 때문에 하선들이 수사기관에 걸려들어 자백하면 윗선까지 줄줄이 잡혀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상선과 하선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동시에 절대적인 보안을 토대로 소통은 원활하게 해줬다. 강점은 살려주고 약점은 보완해준 것이다.
완벽한 보안으로 범죄의 자유 지킨다?
텔레그램은 애초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자유 클라우드 기반 인터넷 메신저이자 음성 인터넷 프로토콜로 2013년 설립돼 세계적으로 사용자 9억 명을 보유하고 있다.
사용자를 검열하지 않고 보안 기능이 강력한 점이 최대 장점이다. 텔레그램 측도 “강력한 암호화로 사용자의 통신을 보호하고 법률에 따르지않는다”고 강조한다. ‘표현의 자유 수호자’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범죄의 자유’로 악용되는 게 현실이다.
최근 성행하는 대표적인 조직범죄는 비상장주식사기다.
통상적으로 ‘상장 예정’, ‘주간사 선정’ 등과 같은 과대 선전 문구로 투자자들에게 비상장주식이 곧 상장된다고 속여 투자금을 가로채는 범죄 유형이다. 이러한 방식의 범죄는 20년 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 기업형으로 조직이 확대됐음에도 검거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오히려 투자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텔레마케터(TM·영업직)들만 다수 검거될 뿐 실질적으로 거액을 가로챈 본사의 관리자들은 성명 불상으로 수사망에 잡히지도 않는다.
최근 부산에 거점을 두고 최소 5000억원대 범죄 수익을 거둬들인 비상장주식 사기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이 범죄 조직은 부산 일대에 네 군데나 별도의 텔레마케팅 지점을 두고 있을 만큼 기업화돼 있었지만 상선인 본사와 하선인 텔레마케팅팀은 오로지 텔레그램으로만 소통해 경찰은 상선의 존재를 파악조차 못했다.
텔레마케팅 팀장인 이모 씨는 경찰 조사에서 “양 실장이라 일컫는 상선을 서울 강남에서 한 차례 만났을 뿐, 이후 텔레그램으로만 연락해 그가 누군지 아는 게 없다”고 진술했다. 단지 그의 기억만으로 양 실장이란 인물이 50대 남성이며 벤츠 S클래스를 타고 다니는 것만 유추했을 뿐이다. 이씨가 경찰에 제출한 텔레그램 내용에 따르면, 양 실장은 “비상장 사업은 보안이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 텔레그램으로만 연락하는 이유는 우리 전주나 대주주가 돈이 많고 보안을 중시하기 때문이다”라고 수차례나 주의를 줬다고 한다.
반면 지시사항은 아주 구체적이었다.
별도의 유심을 우편으로 보내 피해자들과 소통할 때는 반드시 해당 유심을 끼워 넣은 스마트폰으로 하되, 인터넷은 VPN(우회프로그램)을 연결해서 사용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가명을 쓸 것을 강조했다. 또한 비상장주식 추천 종목이 바뀔 때마다 유심과 스마트폰,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전량 파쇄하도록 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 현재 경찰에 붙잡힌 이씨를 포함한 텔레마케터들은 상선으로 의심받고 있다. 실제 자신들이 상선이면서 형량을 덜기 위해 가상의 상부를 가정하고 진술하는 것 아니냐는 게 경찰의 시선이다.
이에 대해 이씨 측은 “상당히 오랜 기간 구체적으로 쌓인 텔레그램 대화 내용이 있음에도 워낙 신변 보호가 철저해 말단인 텔레마케터들이 모든 혐의를 뒤집어쓰게 생겼다”면서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폭발적으로 늘어
텔레그램을 통한 범죄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범죄가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다.
이 범죄의 총책은 백이면 백,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에 본거지를 두고 살아간다. 국내에서 스포츠도박 사이트와 관련된 자들은 회원 유치에 나서는 총판이나 범죄수익을 현금화하기 위한 대포통장업자들이 고작이다.
전직 도박사이트 업자의 설명이다.
그는 국내 최대 불법 도박사이트의 1세대이자 총책 J씨 밑에서 4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 서울 명동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국내에 수십, 수백 개의 도박사이트가 있지만 실상은 대형 사이트가 문어발식으로 새끼를 친 군소 사이트가 대다수로, 총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보면 된다. 그들이 철저하게 텔레그램의 익명 뒤에 숨어서 하선들을 다루기 때문에 총판이나 대포통장 업자들은 자기가 번 돈의 일부가 어디로 올라가는지 전혀 예측도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마약류 유통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된 것도 텔레그램 때문이라는 게 조직범죄 세계의 정설이다.
텔레그램에선 관리자만 메시지를 올리는 ‘채널’을 만들 수 있는데, 바로 이 채널이 마약류를 판매하는 온라인 상점 역할을 한다. 실제 마약류를 판매하는 채널을 검색하고 찾는 것은 쉽다.
대형 포털사이트에 마약류 관련 은어를 검색하면 텔레그램 마약 채널이 우후죽순으로 뜬다. 이들은 액상 대마, 대마, MDMA(엑스터시), 메스암페타민, 코카인, 필로폰 및 기타 약물을 전국 어디든 배송한다고 광고하고 있다. 주요 채널 10개의 구독자 수(마약류 구매자)가 1만 명을 가볍게 넘길 정도다.
텔레그램 마약방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
이러한 채널의 실체는 운반책(드로퍼)이 불시에 검거되면서 그 실체가 한 자락 드러나기도 했다.
월간중앙이 취재한 한 마약범죄자 조서에 따르면 2021년까지 마약류 판매로 악명을 떨친 ‘VIP(브압)방’의 드로퍼 고모 씨가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당시 인천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첩보를 통해 고씨의 범행을 사전에 파악하고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건물 주차장에서 액상 대마를 은닉하던 고씨를 붙잡았다.
고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명문대 S대 재학생이며 급전이 필요해 드로퍼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브압방 채널과 연결됐냐는 경찰의 추궁에 “원래 해당 채널에서 몇 차례 액상 대마를 구매한 적 있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문의하자 그쪽에서 내가 경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도록 주민등록등본, 주민등록증과 얼굴 사진이 다 나오도록 촬영해서 보내라고 했다. 이러한 인증 절차를 통과해 드로퍼로 활동할 수 있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그 상선은 우선 특정 장소에 보관해둔 마약류를 드로퍼가 가져가도록 했다. 그 후 드로퍼는 마약류를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상선의 지시가 있으면 마약류를 재포장해 구매자가 가져가도록 특정장소(낡은 빌라의 우편함, 단자함, 배선함, 양수기함등)에 은닉하는 것을 반복했다.
마약 유통조직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던지기’ 수법이다. 이후 상선은 고씨를 포함한 드로퍼들이 매일 오후 2시 정각에 경찰에 체포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생존신고’를 하게 시켰다. 이때 암호는 ‘좋은 아침입니다’라는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일은 어김없이 오후 6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고씨는 자신에게 일을 시키는 상선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는 경찰에 “상선은 분명히 있다. 제가 대화를 하다가 무슨 일이 생겨서 질문하면 ‘잠시만요’라고 한 뒤 이윽고 ‘누가 어떻게 하라고 한다’며 보다 윗선이 존재하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이런 연유로 최근에는 조직범죄와 관련된 경찰의 피의자 신문 조서에 피의자의 텔레그램 관련 기록이 빠지지 않는다. 모든 조직이 텔레그램으로만 소통하다 보니 수사기관도 초동수사에서 텔레그램의 대화 내용을 관련 증거로 입수하는 게 최우선 업무가됐다.
수도권 경찰서에 소속된 한 경찰은 “스마트폰이 압수수색영장에 올라와 있어도 비밀번호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웬만하면 압수 시점에 일단 비밀번호를 풀라고 한다. 거기서 넘어오면 수사가 쉬워지지만 끝까지 모르쇠하는 부류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상선으로부터 경찰 대응 매뉴얼을 교육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월간중앙 취재에 따르면 범죄 조직의 경찰 대응 매뉴얼은 실제로 존재했다. 도박사이트 운영진에 속한 정모(42) 씨는 이렇게 털어놨다. “1. 업무 관련 대화는 반드시 통신 기록이 없는 공폰(공기계)으로 하되 2. 접속 기록을 추적할 수 없도록 카페나 공공기관의 공용 와이파이를 쓸 것.” 정씨에 따르면 범죄조직에서 선호되는 스마트폰 기종은 아이폰 pro 14다. “경찰이 비밀번호를 모르면 절대로 풀 수 없는 기종이다. 물론 경찰 수사를 사전에 안다면 텔레그램 대화 내용부터 지우겠지만 불시의 상황이란 게있지 않나. 그때를 대비한 것이다. 불법은 정보를 따이는(털리는) 순간 끝나는 거니까”라고 했다.
그는 또한 아이폰의 경우 열 번을 틀리면 완전히 잠금된다며 경찰에 협조하는 척하면서 일부러 비밀번호를 틀리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텔레그램 회사는 지난 10여 년간 급속도로 발전하며 전 세계로 뻗어 나갔지만 직원 수는 거의 늘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전직 텔레그램 직원은 미국의 한 언론에 “범죄 관련 채널을 감시하거나 검열하는 일은 없었고 경찰과의 협조 공문은 아예 외면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텔레그램 없어지면 범죄자들이 대체 앱 출시?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틱톡 등이 각국의 사법기관 요청에 따르기 위해 전담 부서를 두거나 수천 명의 직원이 유해 콘텐트를 찾는 일을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인천의 한 마약 수사관은 이와 관련해 “텔레그램에 자료 협조 공문을 보내는 건 생각도 안 한다. 마약 상선을 잡아들이는 경우도 다른 범죄에 연루된 피의자가 자진해서 형량을 덜고자 본인이 아는 주변 범죄자들을 하나하나 털어놓다가 마약 사범이 포착돼서 수사가 개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텔레그램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 파벨 두로프는 지난 8월 프랑스 르부르제 공항에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텔레그램이 범죄에 악용되는 현상을 방조한 혐의다.
그는 형사 처벌 위기에 “불법을 저지른 텔레그램 사용자의 IP 주소와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수사 당국에 공개하겠다”고 기존 입장에서 선회한 바 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국제 이슈를 조직범죄원 대다수가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도권의 한 범죄조직 원로는 “텔레그램이 범죄자의 신원을 국내 수사기관에 넘겼다는 사실이 확실할 때까지는 괜찮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제는 경찰 수사망을 피해 가는 수법을 우리도 점점 발전시키고 있다. 어차피 위챗, 위커 등과 같은 해외 메신저도 있고, 소문으로는 B자(Black·범죄자)들이 텔레그램을 대체할 회원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중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