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고성]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중국?

2025-08-12

지난 달 말에 중국의 상하이 100여㎞ 아래에 있는 자싱시(嘉興市, 가흥시)를 다녀왔다. IT산업과 로봇 등 중국의 첨단산업단지로 엄청난 발전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자싱시가 유명한 이유는 1932년 상하이의 윤봉길 의사 폭탄의거 때문이다. 4월 29일 일본 왕의 생일 축하 자리는 윤 의사의 물통폭탄 투척으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시라카와 대장이 즉사하는 등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배후임을 밝힌 백범 김구와 임정 요원들의 체포에 혈안이 된 일제는 집요한 추적을 하였다. 이미 도산 안창호가 체포되는 등 백범도 위기에 몰렸다. 간신히 미국인 피치 목사의 도움으로 상해를 탈출한 그가 도착한 도시가 자싱이었다.

그때 백범에 도움을 준 인물이 절강성 성주 출신의 항일운동가였던 중국인 추푸청(褚輔成, 저보성)이다. 추푸청은 백범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저 항일전선의 동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도와주었다. 일제는 백범에게 현상금 60만 원을 걸었는데 지금 단위로 계산하면 약 220억 원에 이르는 거금이었지만 추푸청은 온 가족을 동원해 그를 숨겨주었다. 백범이 피신한 이층의 거처에는 작은 창이 있어 일경이나 밀정이 나타나면 즉시 마룻바닥을 열고 사다리를 내려 준비된 배를 타고 남호의 깊은 호수 한 가운데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빨랫줄에 걸린 옷의 색깔로 위험 여부를 판단해 귀가하거나 선상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추푸청은 이도 부족해 며느리의 친정 소유로 있는 하이엔(海鹽, 해염)의 재청별장으로 피신시켰다. 당시 먼 길을 걸어 안내하며 연신 땀을 닦던 추푸청의 며느리를 보고 백범은 우리가 장차 독립이 된다면 이들 가족의 용감성과 친절을 존경해야 한다고 했다. 6개월간의 하이엔 생활을 마치고 자싱으로 돌아온 백범은 임정이 창사로 이동하기까지 5년여를 중국인 처녀 뱃사공인 주애보와 부부로 위장해 몸을 숨겨야 했다. 그동안 자싱시민 누구도 백범을 고발하지 않았다. 1996년 백범의 아들 김신 씨가 재청별장을 방문해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 근원을 생각하라)을 박명해 고마움과 한중우의의 뜻을 남겼다.

실제로 항일투쟁 기간 우리는 중국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필자도 독립운동은 우리 민족끼리만 한 것으로 알다가 여러 차례 중국을 답사한 뒤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많은 외국인의 도움이 있었고 그중 압도적으로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이 중국인이었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가 되고 6.25 참전이라는 아픈 과거가 있지만, 또 한중수교 이후 우리의 경제적 성장에 결정적 도움을 준 것도 중국이다. 그러나 최근 한중관계는 꼬일 대로 꼬였다. 원인은 국제 정치적인 측면도 있지만 중국의 역사·문화적 침탈과 무시와 친미일변도만 외친 우리의 책임도 가볍지는 않기에 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며 다시금 미국 패권주의를 주창하고 중국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질라치면 가혹하리만큼 응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웃인 중국의 엄청난 변화발전과 대북 견제 카드 등을 두고는 무작정 친미노선만 추구할 수는 없다. 중국은 반도체, 콘텐츠 시장에서는 경쟁자이자 적일 수 있고, 동양이라는 공동의 문화권에서 경쟁을 관리하고 협력을 증대시킨다면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다. 실용을 외치는 이재명 정권의 고뇌를 이해하지만 근원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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