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헤로도투스처럼, 때론 투기디데스처럼...역사가들의 역사[BOOK]

2025-02-14

역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처드 코언 지음

강주헌 옮김

김영사

역사가들의 일은 글자 그대로 ‘역사 만들기’이다. 글로 쓴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이야기’로 만든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 두 가지가 되지 않는 과거는 잊히고 곧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그 때문에 역사가들의 작업에는 조금 신비스러운 면이 있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과거가 현실의 한 차원처럼 느껴지는 건, 잘 인정되지는 않지만 그들 덕분이다.

원제가 ‘Making History’인 『역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사라져 버린 세계의 기록자들, 역사가들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저자 리처드 코언(1947~)은 영국 출신의 미국 언론인이자 저술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장기간 영국 국가 대표 펜싱 선수로 활약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이후 출판업계에서 일하다가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여러 신문에 기고하며 지금까지 네 권의 책을 썼다.

이 책은 기존의 사학사(史學史) 책들과 몇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학문적 중요성보다는 코언의 취향에 따라 역사가들을 선별했다. 둘째, 이야기를 쓰는 능력이 학문적 엄격함 못지않게 중요하게 취급된다. 셰익스피어부터 조지 오웰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이 대거 포함된 것은 그 때문이다. 셋째, 역사가의 개성이 저술에 영향을 주었다고 쓰고 있다.

헤로도토스는 이야기체 역사 서술의 시조이다. 그는 디테일을 인상적으로 만드는 수사학적 기교를 최대한 활용했다. 대신 정확성은 희생되었다. 그러나 그와 대립되는 인물, 냉정하고 학문적이라는 투키디데스 역시 은근히 수사학의 대가였다. 아닌 척했을 뿐이다.

코언이 “역사의 방향은 때로는 헤로도토스, 때로는 투키디데스 쪽으로 바뀐다”고 했을 때 그게 문학과 역사학의 대립이 아닌 건 분명하다. 이야기 만들기에 좀 더 용감한 쪽과 신중한 쪽의 대립에 가깝다. 그리스인들이 역사학에 설정해 놓은 기준은 너무 높아서 문학적 능력 없이 역사를 쓰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역사가는 읽을 만한 책을 써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코믹한 부분은 역사학계의 두 앙숙인 휴 트레버로퍼와 A.J.P. 테일러를 다룬 16장이다. 학계 동료를 비난하는 데 겁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TV 카메라 앞에서도 다투는 그들을 대중들은 좋아했다. 영국 역사가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느낌이지만 근본적으로 이 책은 영국 문화의 산물이다. 영국은 대가들이 기꺼이 대중적 역사서를 쓰고 그게 팔리는 나라이다. “이야기체로 역사를 풀어나가는 것이 영국 전통”이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인문학부 중 가장 큰 것이 역사학부다. 역사학자들의 활약은 TV에도 이어졌으므로, 코언은 그 주제에도 한 장을 할애했다.

독자는 이런 사실들도 알게 된다. 에릭 홉스봄의 부유함에 놀란 한 기자가 그런 삶을 누리면서 어떻게 공산주의자일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가라앉는 배에 타고 있다면 일등석으로 여행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했다. 트레버로퍼는 수업 중에 “자기 글이 명료한지 알려면 라틴어로 번역해 보라”고 학생들에게 권했다(분부대로 한 학생이 있었을지 의문이다). 조지 오웰이 주변 사람들에게 “재미난 사람”으로 인식된 이유는 “탁자에서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뭔가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이상할 정도로 잦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결국 그들의 책과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건 이 책의 의도를 오해한 것이다. 역사에는 늘 설명되지 않는 디테일이 많다는 것을 알았던 헤로도토스는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아무 설명 없이 끝내곤 했다. 오늘날 그 앞에서 어떤 이는 ‘이게 뭐야?’라고 갸웃하고, 어떤 이는 깊은 인상을 받는다. 아마 자기가 역사에 흥미가 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 그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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