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풍경사진이 아니다’

2025-03-07

※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3월 3일

3·1절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와 반대하는 집회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크게 열렸습니다. 주말인데다가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코앞으로 다가와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월요일자 신문 기준으로 이틀이 지난 뉴스사진이지만, 사안이 중요하고 헌재 결정을 앞둔 터라 독자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진엔 ‘106년 전 하나 되어 외치던 목소리는 어디 가고…’라는 제목이 달렸습니다. 찬반 집회 사진을 1면에 나란히 배치한 이유가 더 선명해졌습니다.

이날 이 사진과 경합한 장면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설전을 벌인 ‘고성 회담’이었습니다. 만약 이날 트럼프 사진을 썼다면 이번 한 주 동안 미국발 트럼프 사진을 세 번이나 1면에 싣게 되는, ‘업자’의 입장에서는 씁쓸한 상황이 될 뻔했습니다.

■3월 4일

이 사진은 풍경사진이 아닙니다. 마치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우기는 유명 화가의 문장 같습니다. 직관적으로 풍경사진으로 읽히는데 풍경사진이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사건이자 사고사진입니다. 밤사이에 강원 산간에 최고 50cm의 폭설이 내렸습니다. 흔히 말하는 ‘봄을 시샘하는 눈’이었습니다. 급히 미시령으로 달려간 사진기자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드론사진 위주로 마감을 했습니다. 일부 눈 때문에 불편을 겪는 사진도 있었지만, 새의 눈으로 내려다 본 미시령 일대의 사진이 압도했습니다.

회의 전 3월 폭설이라는 사건사진인데 수묵화처럼 평온하고 한가로워도 되는가, 하고 자문을 해봤습니다. 그럼에도 1면 사진 후보로 선택한 건 탄핵정국의 피로감에 잠시 시각적 위안이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3월 5일

요 며칠 1면 사진회의에 연일 트럼프 미 대통령 사진이 후보로 올라옵니다. 그의 거침없는 입과 그의 무자비한 펜이 서명한 문서에서 시작된 뉴스는 국제사회를 들었다 놨다 하기 때문이지요. 이날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전면 중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앞서 파행으로 끝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회담 파행의 후속 조치입니다.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챙기는 ‘무대뽀’ 장사꾼 전략이지요.

1면 사진은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대만 반도체기업 TSMC 웨이저자 회장을 환대하며 악수하는 모습입니다. TSMC 회장은 이날 미국에 1000억 달러(약 145조9000억 원)를 추가 투자한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가 밀어붙인 관세 정책의 결과입니다. 트럼프와 웨이저자의 많은 사진 중 트럼프의 ‘압박’과 상대의 ‘굴복’의 느낌이 강한 사진을 골랐습니다. 앵글과 인물들의 표정이 관계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습니다.

■3월 6일

전날 1면 사진을 트럼프로 썼기 때문에 이틀 연속 트럼프 사진의 1면 게재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우리시간 오전 11시에 트럼프 취임 후 첫 미 의회 연설이 생중계됐습니다. 1면은 또 트럼프 사진이구나 싶으면서도 이를 밀어낼 수 있는 사진이 ‘짠~!’하고 나타나 주길 바랐습니다. 헛일이었습니다. 조금 보태서 말하자면 이날 외신사진의 절반쯤이 트럼프 의회 연설과 관련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의 양이 그날 뉴스의 중요도를 가늠하는 기준일 수도 있습니다. 이날 전 세계 1위 뉴스는 트럼프 의회 연설이 틀림없습니다.

1면 사진은 트럼프가 의회 연설을 하는 동안 민주당 소속 하원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흔들며 소리를 치는 장면입니다. 트럼프의 의회 연설 사진이되, 의원에 포커스가 맞춰져 트럼프가 희미하게 앵글 안에 들어왔습니다. 트럼프가 그나마 덜 드러나게 쓰는 방식으로 이틀 연속 쓰는 것에 대한 (업자적) 부담을 덜었습니다.

■3월 7일

공군 전투기가 훈련 중 조종사 과실에 의한 폭탄 투하로 민가의 주민 등 15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날 KF-16 전투기 2대에서 발사된 폭탄 8발이 경기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의 민가에 떨어졌습니다. 한·미 연합훈련에 동원된 전투기 조종사는 사격 목표지점에서 8km 떨어진 곳에 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사진은 사고 지점 앞 주택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장면입니다. CCTV에 잡힌 오폭 순간을 두 장의 사진으로 캡처했습니다. 첫 사진 오른쪽 끝에 떨어지는 폭탄 한 발이 걸려 있습니다. 날벼락 같은 사고가 생생하게 담겼습니다. 만일 저 앵글 안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면 쓰지 않았을 사진입니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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