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국방비 폭탄’ 부른 김정은 자충수…돈줄 더 옥죄면 ‘소련식 자멸’

2025-10-13

북한 김정은 정권이 군비 출혈경쟁을 가속화하다가 국방비 폭탄을 감당하지 못한 채 자멸한 옛 소련의 오판과 과오를 답습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금 북한은 수십 배 이상 더 큰 경제 규모를 가진 한국과 미국 등 경제·국방 강국을 겨냥해 핵과 재래식 무력을 강화하겠다며 무모하게 겁박과 도발 수위를 높이는 상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월 11~12일 국방과학원을 방문해 ‘핵무력과 상용무력(재래식 무기)의 병진 노선’ 방침을 밝혔다. 이달 10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서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을 비롯한 핵 투발용 무기뿐 아니라 신형 전차, 자폭 드론 등 현대화된 재래식 무기도 공개됐다.

앞서 북한 노동당은 김정은 체제 출범 후 2013년 2월 피폐한 경제를 재건하면서 핵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는 ‘경제·핵무력 병진 노선’을 채택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약 12년 만에 이 노선을 대폭 강화해 핵무기 고도화에 재래식 무기 현대화를 병행 추진하는 군비 확충 일변도의 폭주에 나선 셈이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과 중국 간 갈등 심화 여파로 유엔의 대북 제재가 느슨해지면서 북한 경제에 다소나마 숨통이 트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에 참전한 북한에 대해 본격적으로 군사·경제적 지원 행보에 나서자 김 위원장은 핵뿐 아니라 첨단 재래식 장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관련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의 경제 여건은 핵무기 고도화와 재래식 무기 현대화를 동시에 뒷받침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익명을 요청한 정부 예산 당국자는 “고성능의 첨단 재래식 무기·장비는 일회성 획득(구매·조달) 비용보다 이를 실전 배치하고 장기간 운용·유지·보수하는 데 드는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큰 구조”라며 “북한이 신형 전투기, 전투함, 전차를 러시아로부터 지원받거나 직접 개발한다고 해도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전력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올해 국방 예산만 봐도 약 61조 원 중 신규 무기 구매·개발을 위한 방위력 개선비 비율이 약 29%인 반면 기존 무기·장비와 인력 등을 유지하는 데 드는 전력 운영비는 거의 71%인 43조 원에 달했다. 최고인민회의가 책정해 발표한 올해 총예산 54억 달러(약 7조 6108억 원) 중 국방비가 15.7%(약 1조 2000억원 추정)인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북한의 인건비가 저렴해도 우리나라의 재래식 군사력을 따라잡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한이 2024년 기준으로 35조 원대(한국은행 추정치)로 추산되는 국내총생산(GDP)의 대부분을 군비 확장에 쏟아붓는다면 일시적으로 재래식 무력의 열세를 보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경제·민생 악화로 인한 정권 붕괴를 자초할 수 있다.

북한 당국도 한국·미국과의 국력 격차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무모하게 핵·재래식 군비 경쟁을 가속화하는 이유는 우선 김정은 시대의 핵전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수석 국민대 특임교수는 “김정은 정권의 핵정책 주요 목표는 정권의 공고화, 대미 압박을 통한 북미 평화협정 추진, 핵보유국 지위 확보를 통한 동북아 국제 질서 재편 등”이라며 “김 위원장이 인민 생활을 향상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실패하자 핵 보유 업적을 통해 상쇄하고자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북한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실현시키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유사시 무력통일을 성취해나가려는 전략적 목표 달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단순 체제 유지 수준을 넘어 핵과 재래식 무력을 통합해 한반도에서 일종의 핵 국지전을 선제적으로 감행할 수 있다고 우려한 대목도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정부 내부 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다. 지난해 말 군 당국의 외부 의뢰로 작성된 ‘북한의 전쟁 전략 관련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께까지의 북한 핵전략에 대해 “김정은은 재래식 전쟁과 핵 사용 협박, 제한 핵전쟁 전략까지 발전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또한 전면 핵전쟁의 문턱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제한적 핵전쟁 공세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담겨 있다. 보고서는 북한의 자유로운 핵무력 사용이 ‘오판’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뤄질 것이라고 보면서 “(북한의) 핵 사용 위협이 실제 핵 사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미가) 전시에도 지속될 수 있는 압도적 억제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6월 취임 후 “가장 확실한 안보는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며 실용적이고 유연한 대북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북한이 핵 포기 불가 입장을 거듭 못 박고 핵·재래식 무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유화 제스처만 취한다면 김정은 정권으로 하여금 ‘무력으로 겁박하니 한국이 고개를 숙인다’고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지 않으려면 북한의 무모한 군사적 모험주의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와 단호한 조치로 김정은 정권이 상황을 오판하지 않도록 정교한 상황 관리에 나서야 한다.

특히 북한 핵·재래식 무력 병진 노선의 아킬레스건인 자금줄을 더 옥죄어 소련식 군비 경쟁의 끝은 자멸뿐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줘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북한이 금융기관 해킹, 해외 불법 취업, 무기 및 핵물질, 광물자원 밀수출로 벌어들이는 불법 외화 자금의 길목을 지켜 계좌를 동결·압수하고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관·기업·개인에 대해서도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극 실행할 필요가 있다.

2차 북핵 위기 와중이던 2005년 당시 미국의 압박 수단 중 가장 크게 북한을 동요시켰던 것은 북한의 불법 자금 및 돈세탁 창구로 악용됐던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를 동결했던 금융 제재였다. 이제는 북한의 불법 자금 통로가 은행과 같은 전통적 금융기관을 넘어 가상화폐거래소 등으로 확대된 만큼 동맹 및 주요 우방국들과 이 같은 신기술 금융 분야에서의 불법 자금 추적·차단 시스템을 구축하고 상시적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와 함께 첨단 재래식 군수 물품의 제조, 운용, 수리·보수에 필요한 핵심 광물·소재·부품 및 소프트웨어의 대북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한미 및 다자간 해상 검색·검문 훈련을 강화해 북한의 재래식 무기들이 실제 가동되기 어렵도록 압박할 필요가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군비 증강 효과를 반감·희석시킬 정도로 우리의 국방력을 강화해 김정은 정권 스스로 군사적 모험주의 실효성이 없음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우리 군의 독자적 북핵·미사일 대응 시스템인 3축 체계를 무인기 및 극초음속 미사일 등 신종 무기 위협에 맞춰 확대 개편하고 한미 간 실전적 핵·재래식 통합 전략 훈련을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 정부를 설득해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도발을 억제할 핵추진잠수함을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길을 트는 것도 당면한 핵심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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