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도로시’ 사랑해”…반려동물 명복비는 축생법당 가보니

2024-09-15

‘우리 딸 도로시, 사랑해.’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2일 경북 영천시 청통면 천룡정사. 절 한쪽에 세워진 법당 안 영단(영혼의 위패를 두는 단) 위에 놓인 작은 꽃다발에 이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영단 양쪽에는 명복을 비는 촛불과 향불이 밝혀져 있었고 위쪽에는 개와 고양이 사진 수십장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천장에는 ‘흰순이’ ‘용용’ ‘크림’ 등 반려동물 이름이 적힌 초록색 영가등(윤회등) 수십여개가 매달렸다. 이름 옆에는 반려동물이 극락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길 비는 ‘망 ○○ 영가 극락왕생’이라는 문구도 적혔다.

이곳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동물의 명복을 비는 ‘축생법당’이다. 반려인들은 반려동물이 죽어 주인 곁을 떠나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표현한다. 천룡정사는 2019년 5월 경내에 전국 최초로 축생법당을 조성했다.

천룡정사 주지 지덕 스님은 죽은 반려동물을 위해 불교식 장례 의식인 49재와 천도재를 지내준다. 동물과 인간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기존 법당에서 반려동물 천도재를 봉행했는데 일부 거부감을 보이는 신도가 있어 반려동물 전용 천도 법당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영단 위에는 반려동물이 좋아했던 간식과 오리 인형 등의 장난감도 놓여있었다. 죽은 반려동물에게 편지를 보내는 ‘하늘편지’함에는 눈물 자국에 잉크가 번진 편지들이 가득했다.

사연도 다양하다. 경찰관 아빠를 둔 경찰견 무진이, 수십 년 전 잡아먹은 노루에게 미안하다며 법당을 찾은 70대 남성, 전염병으로 소를 살처분하고 다녀간 축사 주인, 고국에서 반려견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고 온 재일 교포 등이다. 올해는 서울에서 먹이를 주며 키우던 길고양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안타까운 마음에 천도재를 지내러 온 부부도 있었다.

지덕 스님은 “도로시 엄마는 왕복 600㎞가 넘는 인천에서 올해 7번을 다녀갔다”며 “창구(반려견) 아빠도 경주에서 매일같이 이곳으로 와 30분간 불경을 틀어놓고 간다”고 말했다.

추석을 앞두고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도 많다.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 법당을 찾아 반려동물의 명복을 빌고 좋아했던 간식 등을 놓고 가기 위해서다. 대구에서 온 김모씨(36)는 “큰집에 가기 전에 두부를 보기 위해 왔다”며 “두부가 떠나고 우울증이 심했는데 이곳에서 두부가 친구들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지덕 스님은 반려동물 상실 증후군(반려동물 상실로 인한 우울증)을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고통’이라고 했다. 그는 “신도의 부탁으로 처음 반려동물 천도재를 시작한 이후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알게 됐다”며 “반려인에게 반려견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가족이 죽어 장례를 치른다고 하는데 유난을 떤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축생법당의 애도 방식은 반려동물 상실 증후군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지난해 반려견을 떠나보낸 한 반려인은 “49재 전에는 유골함을 집에 보관할 정도로 이별이 어려웠는데 이제는 가족 모두가 편해졌다. 불교 신자가 아닌데도 스님 말씀을 들으니 집착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지덕 스님에게 말했다.

또 다른 반려인도 49재를 치르고 난 뒤 문자를 통해 “스님, 우리 OO이가 꿈에 나왔는데 꽃밭을 뛰어다니고 있더라고요. 우리 OO이 정말 좋은 데 갔겠죠? 한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고 전했다.

천룡정사 축생법당처럼 법당을 따로 짓지는 않더라도 사찰 등에서 반려동물을 기리는 천도재는 점차 확산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반려동물 상실 증후군을 앓는 인구도 늘어나면서다. 천룡정사도 지난해만 반려동물 25마리의 천도재를 올렸다.

KB 경영연구소의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국내에서 552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지덕 스님은 “축생과 인간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알고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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