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 이란에서는 독재와 부패로 얼룩진 팔레비 왕정이 무너지고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득세했다. 그해 11월에는 미국이 팔레비 전 국왕의 입국을 허가하자 이란 학생 시위대가 전 국왕의 송환을 요구하며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에 난입해 50여 명의 외교관을 인질로 억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에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이란산 석유 수입 금지와 120억 달러에 이르는 재미 이란 공적 자산에 대한 동결 조치를 취했다.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이 최초로 적용된 사례다.
IEEPA는 미 대통령이 1917년 제정된 ‘적과의 거래법(TWEA)’을 근거로 전시 상황에만 타국에 경제 제재를 할 수 있던 것을 평시에도 할 수 있게 한 법이다. 국가 안보, 외교정책, 경제 안정 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자산동결, 금융거래 제한, 수출입 통제, 거래 금지, 기업·개인 제재 등을 할 수 있게 했다. 미국은 이 법을 활용해 2001년 9·11 사태 때 테러 조직의 자산을 차단했고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때는 북한 자산을 동결했으며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때 관련 러시아 기업·인사의 자산을 묶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불법 이민과 펜타닐 등 마약 유입과 관련해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4일부터 중국·캐나다·멕시코 제품에 10~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을 선언했다. 이에 해당 국가들은 같은 비율의 보복 관세,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을 천명하며 맞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EU)에 대한 관세 부과도 위협했다. 세계경제의 블록화와 미국 우선주의 등으로 무역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관세 부과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법은 IEEPA 외에도 무역법 301조(외국의 불공정 행위 대응), 관세법 338조(미국 상업 활동 차별), 무역법 122조(무역수지 조정) 등 다양하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글로벌 정글에서 생존하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경제 지원을 위해 힘을 모으고 기업도 비상한 각오로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