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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핵 개발 같은 거에요. 전략 물자나 무기 같은 거죠. 미국의 핵 우산에 들어가듯 AI도 그렇게 할 것이냐, 아니면 자체적으로 핵 개발하듯 AI를 개발할 것이냐의 문제예요.”
조준희 한국SW산업협회장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이하 협회) 조준희 회장의 ‘AI 핵무기론’입니다. 조 회장은 이번에 협회장을 세번째 연임하게 됐는데, 26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차원의 AI 투자 확대를 촉구하며 이같이 주장했습니다.
일반적으로 IT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최고의 기술과 서비스는 보통 전 세계가 모두 이용하죠. 인터넷이 연결된 거의 모든 나라의 시민들은 구글을 검색 서비스로 이용하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일상을 올리며 유튜브나 틱톡, 넷플릭스로 영상 콘텐츠를 즐깁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한두 기업이 전 세계를 독점하는 일이 매우 흔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런 현상을 당연하게 생각해왔고,, 국내 기업이 이들과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AI도 지금까지는 비슷한 모습입니다. 오픈AI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AI 기술 개발과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현재 모습으로는 이들 중 누군가 AI 분야도 독점할 것 같습니다.
조 회장의 주장은 ‘AI 만큼은 절대 해외 업체에 내줘선 안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AI를 내주는 것은 단순히 시장을 내주는 문제가 아니고 “주권의 문제”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독도가 누구 땅이냐”라고 AI에 물었을 때 “분쟁 지역입니다”라는 답이 나와서는 안되고 “한국 땅”이라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죠.
조 회장은 AI에는 부가적인 응용산업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운영체제(OS)의 경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소수의 미국 기업들이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지만, 그 위에서 국내 기업들이 미들웨어나 애플리케이션 비즈니스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AI는 그 자체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응용 비즈니스가 성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AI를 내주면 모든 것을 내주는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조 회장은 “모든 것을 망라한 것이 AI 산업이기 때문에 AI 산업의 실패는 주권도 잃고 산업도 붕괴될 수 있다”면서 “우리가 선진국에서 중위권 국가로 내려갈 수 있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자본력입니다. 오픈AI는 최근 450조원의 가치로 투자유치를 진행 중입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보다 훨씬 큰 금액이고, 우리나라 정부 1년 예산의 70%가 넘는 돈이죠. 미국에서 진행되는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에는 총 700조원의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리 정부는 최근 4조원의 AI 인프라 투자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도 나름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도저히 자본력 면에서 경쟁을 할 수 없는 수준이죠.
조 회장은 그럼에도 정부와 기업이 투자와 지원을 통해 한국만의 AI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변합니다. 그는 항공우주나 바이오 산업의 예를 듭니다. 항공우주나 바이오 산업도 미국의 투자규모는 우리보다 100배 이상 크다는 겁니다. 이런 영역에서도 자본력 차이는 크지만 우리 정부나 기업은 포기하지 않았고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국내 AI를 키워야 한다고 강변하는 조 회장은 해외 AI를 이용해 국내에 서비스하려는 한국 빅테크 기업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카카오가 오픈AI와 손잡고 카카오톡에서 AI 서비스를 하겠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죠.
조 회장은 “국민 메신저나 국민 검색이 갈 길은 아니다”면서 “외산 빅테크와 제휴를 맺은 곳은 (정부지원에서) 빠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조 회장의 주장은 전체적으로 ‘소버린 AI’와 궤를 같이 합니다. 소버린 AI는 각 국가가 자체 데이터와 인프라를 활용하여 그 국가나 지역의 제도, 문화, 역사, 가치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AI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네이버가 이런 주장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치관과 역사, 문화를 담은 AI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품질이나 성능 면에서 글로벌 AI와는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야 할 것입니다. 소버린 AI라는 이유로 우리나라 이용자만 품질 낮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소버린 AI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오픈AI나 딥서치 등과 견주어 부족함이 없는 서비스를 만들거나,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거대한 혈세를 사용하는 게 받아들여 질 것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