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나는 하나의 서사, 거대한 서사, 선형적 서사로 이뤄진 글을 폭력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매끈하고 납득이 되는 서사일수록 다른 가능한 버전의 현실을 침묵시키기 때문이다. 성공적이며 심지어 윤리적으로 여겨지는 하나의 서사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제모습을 바꾸어 다른 서사를 압제하는 독재자가 된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려고 앉아 있으면 “한편”이란 부사만 떠오른다. 이를테면,
레바논 친구에게 편지가 온다. “상황은 참담하고 지금까지는 전망도 희망도 없어. 정말 비참해. 슬픔, 두려움, 분노… 여러 감정을 통과하고 있어. 이스라엘군은 도시에 폭격을 가하고 민간인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있어. 그들의 정교한 살상 기계들은 쉬지 않고 사람들을 죽이고 파괴하는 데 사용되고 있어. 그들은 인류를 향한 범죄를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자고, 세계 대부분이 그걸 동의해주고 있어. 이건 문명의 수치이자 패배이고, 인간성의 패배야.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붙들려고 노력해….”
한편, 나는 한국에 있는 어머니 집 안방에서 텔레비전 광고를 본다. 과거에는 전쟁 무기를 수입해야 했으나 이제는 자체 기술력으로 무기를 수출할 수 있게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K방산의 잭팟이 터졌다고 말하는 기사를 읽는다. 한강 다리 위에서 폭격 대신 폭죽으로 밤하늘이 밝아지는 것을 본다.
한편,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가 쓴 글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온갖 연령대의 시체들은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은 보이지 않았어야 했다. 대신 사망자의 숫자에만 초점이 맞춰졌어야 했다. (…) 이 글이 특정 독자들, 특히 지적으로 중산층에 속한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는 정치적 선동으로 읽히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 시체들이 그 몸뚱이의 주인공 이외의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다면, 그건 이들과 가까웠던 사람들, 그리고 아마도 이들을 죽인 사람들일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아마도 몇년이 지난 후에. 왜냐하면 살인자들은 지금 너무 지치고 탈진해서, 남아 있는 에너지를 모두 자기 장비와 짐을 챙기는 데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베를린 거리를 걷다가 시청에 이스라엘 국기가 꽂혀 있는 것을 본다. 성소수자와 여성을 환영하고 그들을 향한 차별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걸려 있던 곳에는 이제 “Gegen Jeden Antisemitismus” 곧 모든 반유대주의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걸려 있다.
한편, 현지 취재를 다녀온 친구에게서 이야기를 듣는다. “외신 기자들과 함께 방탄 버스를 타고 가자지구 인접 지역인 크파르 아자(Kfar Aza)로 가는 동안 맡은 다양한 체취. 창밖으로 들리던 포탄 소리와 차로 전해지던 진동. (…) 이스라엘 국방부 관계자는 버스에서 참수당한 시신, 강간 살해당한 여성, 영아 시신의 사진을 보여주며 하마스의 잔혹함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 40인승 버스는 만석이었고 그중 아시아에서 온 취재진은 태국 방송국과 우리뿐이었다. (…) 취재진 몇몇은 희생자 수나 인물에 대한 틀린 통계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국가로 틀린 뉴스를 전송했다. (…) 수많은 이스라엘인을 만났다. 하지만 내가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은 오직 둘뿐이었다.”
한편, 다양한 국가에서 온 여성 예술가가 모인 파리의 콘퍼런스에서 누군가 말한다. “우리 각자의 긴급함과 불안정한 정도가 다르고 이것은 모두 존중받아야 해요.” 흑인 여성이 말을 끊고 말한다. “그 말은 모욕적이에요. 지금 여기에 팔레스타인에서 온 사람 있나요? 없어요. 우리가 뭔가 논의할 땐 항상 그 자리에 누가 없는지를 생각해야 해요.” 다음 순간 레바논에서 온 여성이 질문한다. 공동의 해방을 위해 당신은 뭘 희생할 수 있는가? “난 모든 걸 다 희생할 수 있어요.” 그녀가 말하고, 사람들 사이에는 전에 없던 긴장이 서린다.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