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한강 작가가 지난달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에 떠들썩했다. 내가 문학상을 받은 양 들떠 있기도 했다. 한강 작가의 책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덩달아 다른 출판사 책도 팔리려나 기대를 했는데 크게 변동은 없었다. 그러나 책 읽는 분위기가 전국적으로 살아나서 기뻤다.
책들은 친구이고, 안식이며, 상담자이다. 또한 영감이 솟아나는 지혜의 창고이기도 하다. 좋은 책들이 모여 있으면 그 자체로서 대학 못지않은 값어치를 지닌다. 책이 없는 집에 초대받아 가면, 나는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든다. 왜일까? 내가 당신의 서가에 꽂힌 책 제목들을 슬쩍 훑어보는 것으로 당신의 취향이나 관심분야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고, 저녁식사 때 훨씬 더 풍성한 화제로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개인 도서관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한번 힐끗 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손님들은 당신이 고전에 관심 있는지, 베스트셀러를 좋아하는지, 역사와 정치 어느 쪽에 관심이 있는지, 소설과 여행서 중 어느 것을 좋아하는지, 낚시와 골프 중 어느 것을 즐기는지, 예술과 체육 중 어떤 취미를 갖고 있는지 대충 알게 된다.
당신은 비밀리에 투표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의 정치적 성향은 꽂혀 있는 책 속에서 뻔히 보인다. 당신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상관없다. 당신의 성향은 이미 충분히 표현되어 있다. 당신의 주된 신념도 책장 위에 놓여 있다.
우리 모두는 책 읽는 즐거움과 그 가치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개인 서가를 갖게 되면 그것들을 다시 읽는 즐거움을 몇 번이고 누릴 수 있다.
책 읽는 습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자산 중 하나다. 그리고 빌린 책보다는 ‘내 책’을 읽는 편이 훨씬 즐겁다. 빌린 책이란 집에 찾아온 손님과 같다.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고 격식을 갖춰 배려해야 한다. 그들이 당신 집에 머무는 동안 고생하지 않고 흠집 없이 얌전히 나가도록 신경 써야 한다. 우리는 그 책을 아무렇게나 던져둘 수도, 페이지를 접을 수도, 친숙하게 다룰 수도 없다. 그리고 결국, 언젠가는 그 책을 돌려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내 책’은 정말 내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격식 따지지 않고 친숙하게 내 맘대로 다룰 수가 있다. 책들은 써먹으라고 있는 것이지 모셔두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밑줄 치기 겁나고 테이블 위에 놓아두기 꺼려지고 쫙 펴서 그 위에 얼굴을 대고 잘 수 없는 책이라면 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음에 드는 부분에 밑줄 긋고 표시를 남기는 것은 나중에라도 당신이 어떤 부분에 감동을 받았는지 쉽게 다시 찾아볼 수 있게 해준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펼쳐 보면 그 표시들은 우리가 한 번 와본 적 있는 숲속에 난 오솔길과 같이 느껴진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오래전 지식의 풍경을 다시 느낌과 동시에 그 당시 자신이 어땠는가를 즐겁게 추억해볼 수 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개인소유물에 대한 욕구가 책에 관해서만은 마음껏 발휘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책들은 무엇보다 제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당신이 방의 벽난로 불가에 혼자 앉아 있다 하더라도 친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책들은 자극을 주기도 하고 기분전환을 시켜주기도 한다.
우리가 친구들과 아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해서 그들을 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책 친구들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라도 소크라테스나 셰익스피어, 칼라일, 뒤마, 디킨스, 버나드 쇼, 도스토옙스키, 혹은 톨스토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다. 그리고 장담하지만, 책 속에서의 그 사람들은 최상의 컨디션에서 이야기 한다. 그들은 당신을 위해서 글을 썼다. ‘스스로를 도마 위에 올린 것이다. 그것은 당신을 즐겁게 하고 좋은 느낌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다. 당신은 그들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이다. 배우에게 관객이 소중한 것만큼, 그들은 가면을 쓰고 등장하지 않는다. 당신에게 마음속의 진실을 드러내 준다.
오늘날 우리들은 대중매체의 정보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스마트폰이며 유튜브의 혼을 빼는 영상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지혜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바로 책 속에 있다.
찰리 멍거는 이렇게 말했다. “내 평생, 현명한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단 한 명도.” 작가 세스 레러도 말했다. “우리는 책들을 끌어안고 살아가지는 않지만, 그 책들을 읽었던 기억들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생각나는 작은 구절들과 문장들, 접어놓았던 페이지들, 형광펜으로 칠했던 글귀들을.”
독서는 삶의 예행연습이다. 우리에게 삶을 준비하게 해준다. 일일이 경험하는 힘든 방법으로 인생을 배우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책들은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서정환 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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