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민속악기박물관> 전시장 이모저모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는 120개국에서 수집한 2,000여 점의 악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악기를 수집한 지역을 보면 아프리카ㆍ중동ㆍ인도ㆍ동북아시아ㆍ동남아시아ㆍ오세아니아ㆍ유럽ㆍ아메리카 등 지구촌 구석구석의 다양한 악기들이 총망라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한국의 악기들도 있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악기 여행을 떠나보실까요?” 학예사 인턴 과정을 밟고 있는 김효은 선생은 박물관에 입장한 관람객들을 지하 1층으로 안내했다.
2일(일) 낮 2시 무렵, 등잔 밑이 어둡다고 살고있는 도시 고양시의 옆 동네 파주시 탄현 헤이리마을에 갔다가 우연히 들른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이영진 관장, 아래 ‘악기박물관’)에 들어간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동안 ***박물관이라고 이름 붙은 사설 박물관들을 가끔 들어가 본 적이 있지만 실상은 기대에 못 미치는 내용물로 실망한 적이 제법 있었다. 그런 기억으로 악기박물관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섰는데 아뿔사! 1층 입구부터 전시된 악기들이 두 눈을 사로잡았다. 이날 악기박물관 설명은 지하 1층 전시장에서 시작되었다.

“자, 여러분 앞에 있는 이 악기, 혹시 무슨 악기인줄 아시겠어요?” 김효은 학예사의 질문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대뜸 ‘실로폰’이라고 답한다. 실로폰이라고 답을 한 어린이는 부모님과 함께 온 관람자였다. 정답은 ‘발라폰(Balafon)’이라는 나무로 만든 아프리카 악기였지만 모양은 꼭 실로폰 같았다.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실로폰의 원조(?)인 듯했다. 김 학예사는 발라폰을 직접 쳐보면서 관람자 중 누구라도 좋으니 한번 쳐보라고 한다. 언뜻 대나무 조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소리는 제주의 물허벅을 칠때 나는 소리처럼 맑고 청아했다. 뭐라 할까? 쇳조각 실로폰 소리 같지 않은 정겨운 소리였다.
김 학예사는 그렇게 우리들에게 친절한 악기 설명과 시연을 보여주었다. 솔직히 육십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다양한 악기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소리까지 들어보기는 처음이다. 그간 간헐적으로 아프리카 민속악기라든지 남미의 악기 또는 이웃 나라 일본의 악기 등등을 구경할 기회는 있었지만, 파주의 악기박물관처럼 다양한 악기를 접하기는 처음이다.
이날 구경한 악기 가운데 인상에 남는 악기가 있다. 언뜻 보면 한국의 대금보다 굵은 크기의 악기처럼 보였는데 그 이름이 재미있다. 그 이름이 '레인스틱(Rainstick)'이란다. 김 학예사는 이 악기를 들고 입으로 부는 것이 아니라 위아래로 흔들어 보였는데 ‘차르륵차르륵’하는 소리가 마치 빗소리 같았다. 재료는 사막 지역에서 말라버린 선인장 나무의 속을 파고 그 속에 선인장 가시나 조개껍데기 등을 채워서 만든다고 했다.
원래는 남미 원주민 언어로 'palo de lluvia'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원주민들이 가뭄을 겪을 때 비를 부르기 위한 기우제 의식을 치르는 도구였다고 한다. 기우제가 진행되는 동안 제사장은 비의 신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써 이 레인스틱을 흔들어서 빗소리를 냈다는 것인데 일종의 주술적인 도구로 출발하여 이제는 특수한 소리를 내는 악기 반열에 오른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원래부터 악기였던 것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득 1997년 10월 호암아트홀에서 초연한 ‘난타공연’이 생각났다. 물통이며 프라이팬, 도마 등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나의 조화를 이뤄 훌륭한 악기 구실을 한다는 사실에 놀랐던 적이 있다. 이미 ‘난타공연’은 전 세계적으로 이름난 공연이 되고 있지 않은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생활 도구들도 훌륭한 악기로 변신하고 있다.
꽤 오래전에 일본인 교수가 나무를 자르거나 켜는 톱을 이용한 ‘톱악기’ 연주를 한국에서 한 적이 있다. 그의 통역을 맡아 김포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이 교수가 타고 온 비행기 손님이 다 빠져나가도록 나오질 않아 걱정하고 있을 때 쯤 겨우 나와서 하는 말이 “톱을 악기로 가지고 온 것인데 위험 물건이라고 분류되어 별도의 조사를 받았다”라는 것이었다. 고생 끝에 조사에서 풀려났지만, 나는 그때 ‘톱악기’ 소리가 그렇게 멋진 줄은 처음 알았다. 서양의 바이올린 소리 비슷하면서도 한국의 해금소리 같았던 맑고 아름다운 호소력 짙은 선율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난타공연에서 느꼈던 그 신선함, 톱악기가 내던 그 아련하던 선율을 들으며 나는 ‘악기란 고정된 것이 아닌 도구’라는 고정틀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일까? 미처 눈길을 다 줄 수 없었던 이날 악기박물관에서 만났던 수많은 악기들, 소리와 모양이 완전 생소했던 악기들에 대한 호기심이 스멀거렸다. '그래, 자주 와서 이 많은 악기와 이야기를 나누자라'라며 악기박물관 관람을 마쳤다.
악기란 단순히 소리를 내는 연주 도구가 아니라 악기를 사용하는 민족의 삶을 투영하는 훌륭한 문화유산이요, 그 민족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생활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전 세계 120개국의 다양한 악기를 통해 수천 년 이어오는 각 민족의 풍습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한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진 하루였다. 다만, 전세계 120개국의 2,000여 점의 악기들을 제대로 전시하기에는 전시장이 비좁은 느낌이 들었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서는 상설전시를 비롯하여, <기타의 탄생>(2024.5.4.~12.31)처럼 기획전시는 물론이고 하와이 우쿨렐레만들기, 칙칙폭폭 기차피리만들기 등 직접 악기를 만드는 체험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있어 어린자녀들과 방문해도 꽤 유익한 시간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곳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63-26
*입장료: 어른 7000원, 학생(초중고) 6000원 등
*개관시간: 9시30분~5시30분(월요일 휴관)
*관람문의 : 031-946-9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