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포천시에서 촬영 하나를 마치고 고민을 시작했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가까운 강원 철원 고석정에서 가을 꽃축제가 열린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일이 늦게 끝났다. 게으름이 짜르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마음은 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몸은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고 보채는 상황. 에라 모르겠다, 갈림길에서 운전대를 철원 방향으로 틀었다.
한편으로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 주차를 하고 걸어서 꽃밭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기대했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한다. 그때였다. 내가 바라던 풍경이 눈앞에 드러났다. 마치 햇살이 고운 파우더를 공기 중에 뿌려놓은 듯 대지 위로 쏟아졌다. 종일 화사한 빛을 뽐내던 꽃들도 그 빛에 물들어갔다. 꽃 사이를 걸었다. 꽃만 보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절정의 순간이다. 도리어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사람에게는 꽃 사이의 사람까지 모두 다 꽃과 어우러지는 풍광이 된다. 따스한 그 빛이 좋아 한참을 꽃밭에 머문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마지막 시간, 가장 아름다운 축제는 바로 지금이다.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