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60%, 사모펀드의 기업 M&A에 '부정적'…“고용 불안 우려”

2025-01-16

국내 사모펀드는 지난 20년간 극적인 성장을 이뤄왔다. 아직 초기지만, 이제 시장 규모는 물론 운용사(GP)의 운용 측면에서도 일정한 궤도에 올라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사모펀드는 IMF 이후 2004년 외국계 자본이 독점하다시피 한 국내 기업 구조조정 시장에 토종 자본의 진출을 허용하기 위해 간접투자산운용업법과 시행령을 시행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국내 사모펀드 시장 규모는 급속도로 커졌다. 2004년 말 총 4000억원 규모로 두 개의 펀드가 결성된 이후 2023년 말 기준 출자 약정액은 136조4000억원, 펀드 수는 1126개로 덩치를 키웠다. 20년새 약정액은 341배가량 커진 셈이다. 하지만 국민이 바라보는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열명중 여섯명, 사모펀드 기업 인수 고용에 부정적

전자신문이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에 지난 14~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57.6%는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합병(M&A)가 확대될 경우, 국내산업에 있어 고용과 일자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 답했다.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란 응답(11.7%)과는 5배 이상 차이가 났다.

또 응답자의 55.2%는 사모펀드가 기업 경영권을 인수한 후 불필요한 자산 매각이나 인력 감축을 통해 단기적인 수익 성과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아 고용 불안을 야기한다고 응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의견은 절반 이하(25.2%)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 절반 이상은 고용 불안과 함께 사모펀드가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사모펀드의 기업 M&A가 고용 불안을 야기해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결과에 대해 사모펀드가 단기적인 수익 극대화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사모펀드의 한계를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사모펀드는 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높여 되파는 방식으로 수익을 낸다. 투자 확대 등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고려하기보단 단기 실적 확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결국 재무구조 개선 및 경영 효율화를 명목으로 과도한 비용 절감과 핵심 자산 매각, 구조조정이 이뤄진다. 이는 해당 기업의 고용 불안은 물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가 기업 인수후 무리하게 투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해칠 가능성을 우려한다.

◇투자금 회수 전략으로 기업 체질 개선에 부정적

사모펀드의 투자금 회수 전략 중 하나가 회사 이익 발생 시 주주에게 나눠주는 분배금(배당)이다. 사모펀드 입장에서 배당은 투자금을 중간 회수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투자금 회수를 위한 고배당 정책을 펴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IMM프라이빗에쿼티(PE)를 최대주주로 둔 한샘을 꼽는다.

한샘이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실적이 꺾여 2022년 713억원 순손실에 이어 지난해에도 622억원 순손실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배당 규모를 키우면서 현금 유동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과도한 구조 조정과 원가 절감 등 비용 줄이기가 지나칠 경우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앞서 ING생명(현 신한라이프)와 홈플러스 인수에 나섰던 MBK는 10년 이상 장기적 경영과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ING생명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 6개월여 만에 임원 32명 가운데 18명을 내보냈다. 평직원의 30%에 달하는 270명 감축을 목표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홈플러스는 MBK에 인수된 지 8년 만에 직원 1만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M&A 통한 기술 유출 우려 시각도

일각에선 핵심 기술 유출 우려도 제기한다. M&A 방식으로 국내 기업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면서다. 중국 상하이 자동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뒤 고용 유지와 신차개발 투자를 약속했으나 구조조정 실시 및 투자약속 불이행, 완성차 생산기술과 하이브리드 관련 기술 등을 유출하고 2009년 법정관리 신청 후 철수했다. IT 분야에선 중국 BOE에 인수된 하이디스가 꼽힌다. 2002년 중국 BOE는 현대전자의 액정 표시장치(LCD) 자회사 하이디스를 인수해 핵심 기술을 빼돌린 뒤 4년후 하이디스를 부도 처리했다. M&A를 통해 기술 유출이 이뤄지면 이는 국내 산업 경쟁력 저하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배터리, 반도체 부품 등 핵심 중소기업의 경우 이 같은 상황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다.

이에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사모펀드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사모펀드가 거대한 자금력을 발판으로 경영권 갈등을 겪는 기업이나 취약한 기업에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다. 실제 고려아연과 영풍간 경쟁에선 대주주가 각각 30%가 넘게 지분을 보유하며 서로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물론 사모펀드의 순기능도 있다. 상속으로 인한 지분율 하락시 경영권 방어에 도움을 주거나 효율화를 통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다는 점에서다. 또 사모펀드는 기업이나 산업의 구조조정에서 유동성 공급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M&A 활성화를 통해 자본시장 순환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만 사모펀드의 역할이 커진 만큼 사회적 책임성 강화와 투명성 제고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올해 우리나라 산업 구조조정 부문에서 사모펀드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본다”면서도 “20년간 사모펀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과 역할에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경민 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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