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범 혀 자른 18세 소녀…말자씨가 61년간 숨긴 이야기

2025-08-04

이팩트: 이것이 팩트다

1화: “열 받아가 죽을 거 같으면, 백 번 천 번도 더 죽었을 기라”

1964년 7월의 장맛비가 쏟아지던 어느 아침. 18세 소녀 최말자는 고무신을 신고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섰다.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20대 남성의 혀를 본능적으로 깨물어 방어한 혐의를 소명하기 위해 검찰에 불려나가던 차였다. 경찰 조사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터라 큰 탈이 없으리라 안심했다.

그런데 검찰이 이상했다. ‘피해자’ 최말자를 성폭행범에 중상해죄를 가한 가해자로 돌변시켰다. 졸지에 구속되고 철창에 갇히는 영어(囹圄)의 신세로 떨어졌다.

나는 어딘지도 모르고 들어갔어. 갑자기 철컹 쇳소리가 나는 기라. 이게 뭐지 싶어, 선 채로 한 바퀴를 돌아보니 창살로 둘러싸인 한 평이나 되는 방 안에 나 혼자 있었지. 얼마 있다 수갑을 탁 채우더니 버스에 타고 간 곳이 부산구치소였던 기라.

영문도 모른 채 감옥에 갇힌 어린 딸을 구치소에 남겨두고 아버지는 홀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부당한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판결 탓에 최말자는 평생을 ‘죄 없는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비운의 인물로 가둬 두지 않았다. 불의에 맞서 바로잡기로 했다. 승산이 없는 도전, 아픈 상처에 더 큰 생채기만 낸다는 주위의 우려와도 싸웠다.

61년이 흘러 79세 할머니가 된 최말자는 마침내 ‘누명’을 벗었다. 지난달 23일 열린 최말자씨에 대한 재심 공판에서 검찰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한 행위로써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죄인의 꼬리표를 스스로 뗀 것이다. 9월 10일 선고공판이 기다리고 있지만 무죄가 확실시된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지난달 26일 부산시 사상구에 있는 자택에서 최말자 할머니를 만났다. 이날은 윤향희(56)씨와 저녁을 함께하기로 한 날이다. 윤씨는 말자 할머니와 방송통신대 13학번 동기며, 할머니 곁에서 지난 수년간 싸움을 묵묵히 함께해 준 조력자다. 말자 할머니는 ″내가 뭐라꼬 여(부산)까지 왔나?″라면서도 인터뷰를 위해 찾은 기자를 따뜻하게 대했다.

무죄(無罪). 61년간 두 글자를 쟁취하기 매달려 온 험난한 여정에 심신이 지쳐 있었지만 최 할머니는 기자를 배려하며 냉장고 속 시원한 꿀홍삼차를 건넸다.

최말자 할머니의 굴곡진 삶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기록이자 역사다. 최말자 할머니의 어투와 표현을 그대로 살려 그의 애틋한 사연과 험난한 투쟁의 시간을 옮겨 본다.

‘말자(末子)’의 기구한 운명

최말자 할머니도 다를 바 없었다. 딸만 연달아 셋이 나오자 ‘딸은 이제 그만 나오라’는 뜻에서 ‘말자(末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할머니가 태어난 1946년과 유년 시절을 보낸 1950년대, 당시는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 여성이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아들은 가문을 잇고 부모를 봉양할 존재, 여성은 집안일에 투입하는 노동력에 불과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최말자 할머니도 이런 숙명을 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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