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출신 장관은 역할에 한계 있어
방첩사, 보안·신원조사 등 권한 분산해야
개혁은 ‘벌’보다 ‘책임감’ 관점에서 접근
육사 배제보다는 구조적 차별 개선해야

12·3 비상계엄 사태로 국방 분야 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다. 민주적인 민·군 관계 설정과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 개편 등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55)은 지난 10일 인터뷰에서 “군에 대한 문민통제 강화를 위해 문민 출신 국방부 장관이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1961년 이후 국방부 장관은 모두 예비역 장성 출신이 맡았다. 그는 국방부 차관의 군 내부 의전서열도 2위로 높이면 문민통제 인식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차관의 서열은 장관과 4성 장군들에 이어 아홉 번째다.
12·3 비상계엄에 연루된 방첩사 임무 중 방첩 기능을 제외한 보안·신원조사·정보수집 등의 권한을 다른 기관으로 분산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그는 “방첩사 개혁을 벌을 준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선 안 된다”라며 방첩사 해체 여부는 차기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1992년 행정고시 합격 후 국방부 전력정책과장과 조직관리담당관 등을 거쳐 2017~2020년 기획조정실장을 맡았다. 국방부 재직 기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과 국가안보실 등에서 파견 근무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2·3 비상계엄 사태에 군이 개입됐다.
“외부 위협에서 사회를 보호하는 군은 그 자율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비상계엄 사태는 사회가 군에 대한 지도·감독을 소홀히 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 민·군 관계의 취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불법 명령에 군이 무기력하게 동원된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다. 군의 자율성과 민주적 통제가 균형을 이루는 건 굉장히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민·군 관계를 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일부에서 문민 국방부 장관 필요성을 거론한다.
“장관의 역할을 논하려면 먼저 국방부의 역할부터 살펴봐야 한다. 국방부라는 조직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 역사가 길지 않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처음 만들었다. 이전에는 육군성 등 별개 군으로 전쟁을 치렀다. 군은 대통령 등 절대 권력자에게만 충성하는 구조였다. 선출된 권력인 문민정부와 군을 연결할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국방부가 탄생했고, 이에 따라 군이 행정부 밑에 위치하게 됐다.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작동토록 하려는 조치였다.”
-예비역 장성 출신 장관과 문민 장관 차별점이 있나.
“장성 출신 장관은 군 전체를 장악하면서 강력한 지휘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장관의 역할은 군의 지휘관에 국한된 게 아니다. 역대 장관들의 지휘서신 등을 보면 군단장·사단장의 언어와 차이가 없을 때가 많다. 군 지휘관의 사고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관은 약 60조원에 이르는 국방비와 50만명의 장병은 물론 국방 연구·개발(R&D), 방위산업 등 방대한 군의 생태계를 이끌어야 한다. 또 경쟁이 심한 육·해·공군을 조율해 국방력 전체를 높이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국방 조직의 경영자인 것이다. 장관은 또 국가 차원의 외교·안보 전략 및 정책의 수립·이행 과정에도 관여한다. NSC 일원으로서 필요에 따라 타 부처와의 소통 등 의견 조율도 해야 한다. 평생 작전 업무만 하던 인물이 장관에게 요구되는 이런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국방부를 처음 만든 미국은 어떤가.
“미국 국방부 장관은 정치인, 기업인, 전문가 등이 맡는다. 지금 한국에서 장관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합동참모의장이나 각 군 총장의 몫이다. 문민 장관이 나오면 합참의장 등의 위축된 지위와 역할이 제고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관은 정책·전략적 수준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집중하면서, 군은 구체적인 작전과 부대 관리라는 역할 수행에서 자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한국에서 1961년 이후 문민 장관이 없었다.
“정권이 정치적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의 위협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장성 출신 장관이라는 관성이 지속했다. 국방부 장관 본연의 역할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 차관의 군 의전서열이 9위다.
“의전서열과 직무상 권한은 다르다. 그러나 이런 서열은 군 내부 인식에 영향을 끼친다. 군의 고위 지휘관 입장에서 장관에게만 복종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군이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평가한다. 차관 서열이 2위가 된다면, 행정부 밑에 자리한 군의 위상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5공화국(1988년) 이전에 차관 서열은 장관 다음이었다. 미국 국방부 차관도 서열 2위이고, 심지어 차관보급(실장급)도 각 군 총장보다 서열이 높다. 의도적으로 서열을 낮춰놓은 것이다.”
-국방부 문민화 실태는.
“국방개혁법 시행령은 국방부 정원의 70% 이상을 군인이 아닌 공무원으로 채우도록 한다. 표면상 숫자는 달성했지만, 실질적인 문민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70% 안에 예비역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무엇보다 핵심 직위를 군인이나 예비역이 맡고 있는 점이 문제다. 정책·전력·인사 등에는 현역과 예비역이, 예산·보건·복지·정보 등 지원 업무에는 공무원이 배치돼 있다. 공무원이 아래서부터 전문성을 축적해야 위에 올라가서도 핵심 자리를 맡을 수 있는데, 그런 경로가 마련돼 있지 않다.”
-국방부를 통제하는 방안은.
“국회가 예산과 입법, 청문을 통해 국방부를 통제하는 권한은 강화됐다. 그러나 이는 전체 국방 업무의 일부에 해당한다. 국방은 ‘어떻게 싸울 것이냐’를 정하는 군사전략이 제일 상위에 위치하고, ‘어떤 무기가 필요하느냐’는 전력증강 소요와 군 구조 개편이 뒤따른다. 이를 바탕으로 5년짜리 부대구조와 전력증강 계획이 나오고, 다시 이를 기반으로 단년도 예산이 결정된다. 지금 국회는 예산 같은 가장 아랫단만 통제한다. 군사전략과 중장기적인 군사력 소요 증강 방향 등의 적절성도 국회가 관여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국회가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면서 예산을 삭감하는 사례도 방지할 수 있다. 최소한 군사전략서, 중장기 소요문서, 중기계획 문서 등을 국회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국회가 지도·감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첩사 개혁 논의가 많다.
“방첩사는 과거 국군보안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 시절부터 논란이 됐다. 방첩사에는 주요 권한이 집중돼 있다. 방첩·보안뿐 아니라 신원조사와 정보수집 등 임무 하나하나가 막강한 힘을 갖는다. 군 인사에 사용되는 신원조사의 내용에 따라 군인 한 명의 인생이 좌우된다. 특히 당사자는 조사서에 적힌 내용을 전혀 알 수가 없어 항변할 기회도 없다. 보안 문제도 잘못 걸리면 치명적이다. 정보수집도 그 범위가 필요 이상으로 광범위하다. 신원조사는 현재 상관과 동료의 평가에 더해 필요하다면 경찰의 탐문을 통한 세평 조회 등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본다. 보안은 국방부 감사관실과 각 군 감찰실로 넘기면 된다. 방첩사는 꼭 필요한 방첩 기능만 수행하면 된다. 방첩 업무 과정에서 군대 내 동향 파악도 가능할 것이다.”
-그간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대통령이 군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수집해서 보고하는 방첩사의 효용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다. 과거에도 정권 초기에는 방첩사령관의 계급을 낮추고 대통령 독대도 없앴으나, 정권 말기에 부활시킨 사례가 있다. 선출된 권력이 방첩사가 아닌 다른 대안을 통해서도 군을 통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는 해체해야 하나.
“차기 정부가 결정할 문제이다. 해체 여부는 대외적인 상징성 등을 고려한 기술적인 부분이라고 본다. 다만 개혁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켰으니 방첩사를 없애야 한다’는 벌을 부과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선 안 된다. 군 조직의 개혁은 ‘국민에게 필요한 군을 어떻게 국민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까’라는 책임감 이행의 관점에 기반해 진행해야 한다. 권한을 분산 및 조정하는 작업 결과에 따라 해체, 축소, 통폐합 등 조직의 최종 형태를 선택하면 될 것이다. 개혁 과정에서 책임이 없는 구성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구성원들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일도 없어야 하겠다.”

-불법 명령도 따르는 군 문화를 개선할 방법은 없나.
“그간 군에서 상관을 향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헌법과 국민에 대한 충성보다 우선했다.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민주주의와 헌법 교육을 실질화해야 한다.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의 교수진 중에 민간 교수는 10% 내외에 그친다. 90%가 현역군인이거나 예비역인 것이다. 미국 사관학교는 민간 교수진이 30~50%에 이른다. 우리도 이 정도로 비율로 높여야 한다.”
-장성 인사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군 인사는 대통령 권한이다. 문제는 대통령이 어느 수준까지 개입하느냐이다. 현행 법령상 장군 인사는 각 군 총장이 인사안을 짜서 추천하면, 장관의 제청을 거쳐서 대통령이 재가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총장이 인사안을 짤 때부터 대통령실이 관여한다. 그러면 ‘실력’보다는 ‘코드’가 더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 방식으로 승진한 장군들도 보은 심리가 작동하고 ‘친위 쿠데타’ 등 부적절한 행태에 동원될 위험성이 커진다. 각 군 총장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장관과 대통령이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선출된 권력의 자기 절제도 필요하다.”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비상계엄 주축이 됐다.
“육사 출신을 단기적으로 배제하는 건 바람직한 처방이 아니라고 본다. 역차별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인사 분야에서 구조적인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 사관학교·3사관학교·학군(ROTC)·학사 출신 장교 중 사관학교 출신들만 장기복무가 보장된다. 육군의 경우 육사 출신은 전체 소위 임관자 중에서 3.7%밖에 안 되지만 영관급이 되면 50%, 장성이 되면 80% 이상을 차지한다. 육사 출신은 승승장구하고, 나머지 출신들은 장기복무를 못 하거나 뒤처지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모든 장교에게 장기복무를 허용하고, 출신과 상관없이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목소리도 있다.
“계엄의 책임을 육사 자체로 돌리는 것은 과도한 것 같다. 다만 사관학교 통합은 장교들의 합동성을 기른다는 측면에서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육·해·공군이 합동작전을 펼치는 현대전 양상을 고려하면 사관학교 때부터 같은 지붕 아래서 교육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각 사관학교가 1년에 배출하는 인원은 600여명인데, 이를 위한 교수·교관은 300여명이고 지원병력까지 합치면 2000명이 넘는다. 사관학교를 통합하면 이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향후 병력자원 부족은 피할 수 없나.
“2035년이 되면 병력이 현재의 50만명에서 40만명으로 줄고, 그 이후에는 35만명으로 줄어든다. 병력자원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이어서 완전한 모병제 전환은 어렵다. 모병제적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력구조가 재설계 돼야 한다. 50만명의 군인 중 20만명이 간부다. 즉 40%는 모병의 성격이 있는데, 이를 강화하는 것이다. 첨단 과학기술군이 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상비병력을 뒷받침하는 민간인력도 중요하다. 상비병력이 40만명이 되더라도, 민간 인력 규모가 10만명이 되면 총 국방 인력은 줄지 않는다.”
-새 정부가 집중해야 할 국방 과업은.
“군의 정치적 중립과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고, 미래를 준비해 과학기술군으로 재설계하는 방안이 중요해 보인다.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한·미 동맹 관리, 북핵 위협에 대한 대응, 국방 운영의 효율화에 대한 노력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