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은 고집이 셌다. 이는 매우 잦은 빈도로 독선과 아집으로 발현됐다. 그 종착지가 나 홀로 정의로웠던 비상계엄 선포와 뒤이은 파면이었다.
하지만 그의 고집은 가끔은 뚝심이기도 했다. 다른 이라면 회피하거나 미뤄버릴 문제에도 거침없이 손대고, 정면돌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일 관계를 다룰 때 그가 그랬다.
외교·안보 분야는 수사로도 다뤄본 적이 없는 윤 전 대통령이지만, 일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에 근무했던 한 일본 외교관은 검찰총장 시절 그를 만났던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생각보다 일본과 한·일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나름의 생각이 논리적으로 갖춰져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유학한 아버지 윤기중 교수 덕에 일본에 체류한 경험이 있기 때문인가 생각했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단순히 그런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일 관계가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나빠진 데는 과거사,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인한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윤 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야 한다.’
이를 자를 수 있는 ‘윤석열의 검’이 3자 변제 해법이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들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일본 측은 징용 문제는 이미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고 반발하며 한·일 갈등이 증폭했다.
☞문희상안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징용 문제 해결을 위해 제안한 방안이다. 한·일 기업(2)과 양국 정부(2), 국민(α)이 참여해 모은 성금으로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하는 게 골자로, 이른바 ‘2+2+α’로 불린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목영준안
외교부가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에게 자문을 구해 제안된 방안으로, 민법상 ‘중첩적 채무인수’ 원칙을 징용 문제에 적용할 수 있다고 봤다. 제3자와 채무자가 합의하면 채권자의 승낙 없이도 대신 빚을 갚아줄 수 있다는 게 골자로, 윤 정부의 징용 해법인 3자 변제안을 확립하는 단초가 됐다.
# ‘문희상안’ 말고 ‘목영준안’
“그나마 현실적으로 검토됐던 게 문희상안입니다.”
“아니야. 문희상안보다는 목영준안이 현실적이지.”
그가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한 뒤 대선 출사표를 던지기 전 ‘과외 공부’를 하다가 강제징용 문제를 토론 주제로 다루게 됐다. 문재인 정부 당시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제안한 이른바 ‘2+2+α’안은 한·일 기업(2)과 양국 정부(2), 국민(α)의 자발적 기부금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게 골자인데,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방안으로 ‘문희상안’이 제기되자, 그는 대뜸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의 이름을 꺼낸 것이다. 당시엔 목영준안의 실체도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