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제조업 패권 경쟁은 지금도 치열하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전환(DX) 등 각국이 내세우는 규제·기술 표준은 산업단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제조업 고용의 3분의 1 이상이 산업단지 기반에서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도 “첨단 기술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결합한 산업단지만이 향후 10년간 국가 경제의 성장 엔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디지털화(Digitalization)·ESG·탈탄소 등 트렌드에 발맞춰 각종 전략을 구상하고 전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산업단지는 지난 1964년 구로공단을 시작으로 반세기를 넘어 60년 역사를 쌓아왔다.
이어 1970~8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육성과 노동운동의 상징이 된 시기를 거쳤고, 2000년대 들어서는 구로디지털산업단지를 비롯해 첨단 지식산업 중심지로 변모했다. 그 과정에서 산업단지는 ‘수출 1억 달러 달성’의 주역이 된 바 있다.
지금은 전국 1300여 개 산업단지에 12만 개 기업, 200만 명의 근로자가 활동하는 제조업 주요 무대로 활약 중이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 생산의 약 60%, 산업 고용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다. 산업단지가 곧 한국 산업사의 압축판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 가운데 한국산업단지공단(KICOX)·(사)한국산업단지경영자연합회(KIBA) 등 관련 기관은 국내 산업단지 혁신을 위한 의지를 공고히 하는 중이다. 특히 이들은 산업단지를 ‘신성장 거점’으로 재정립하겠다는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출을 통한 글로벌 판로 개척은 핵심 비전이다. 이는 국내 제조업의 생존과 직결된 만큼, 이와 연결된 산업단지 생태계 고도화는 필연적으로 수행돼야 하는 선결 과제다.
산업단지, 국가 산업의 핵심으로...과거·미래를 잇는 ‘KICEF 2025’

이처럼 국내 산업단지는 다양한 도전에 직면했다. 산업단지는 이제 미래 제조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게 됐다. 미래형 제조 혁신의 기반 및 인프라. 공공·민간 협력 생태계 구축, 에너지 전환 등 여러 비전을 달성해야 한다.
여기에 지속가능성 확보에 대한 국제적 요구에도 적절히 응답해야 한다.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 SBTi(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기준 등은 국제적으로 요구되는 대표적 이니셔티브다. 이에 부합하는 친환경 경영과 투명한 정보 공개가 곧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로 이어진다.
또한 산업과 문화가 공존하는 젊은 산업단지 조성 또한 중요한 미션이다. 다양한 세대, 특히 미래 인재와 차세대 인력이 일하고 싶어하는 산업단지 환경이 구축돼야 한다. 이는 사람·기술·환경이 함께 융합되는 미래 플랫폼으로서의 새로운 방향성이다.
이러한 변화와 과제를 논의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장이 바로 ‘산업단지의 날’과 ‘대한민국 산업단지 수출 박람회(KICEF)’다. 양 행사는 산업단지 혁신 전략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달 10일 열린 KICEF 2025는 KICOX·KIBA·글로벌선도기업협회(GLCA)·(주)첨단이 공동 주최한 수출 전략 플랫폼의 시발점이다. 산업단지 입주기업의 해외 판로 개척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비즈니스 융합형’ 전시회로 기대받는다.
초대 KICEF는 사흘간 경기 고양시 전시장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이어진다. ‘산업단지 기반의 수출 확대와 기술 혁신’을 주요 테마로, ‘K-산업, 세계와 함께하는 동반자(K-INDUSTRY : Your Global Partner)’를 공식 슬로건으로 펼쳐졌다.
전시장에는 자동화·정밀기계, 로봇 및 자동화 시스템, 산업용 IT, 반도체·전자 부품, 화학·바이오, 건축자재와 생활소비재 등 한국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 기술이 자리잡는다. 산업단지 업체로 구성된 약 300개사가 500여 개 부스를 마련했다.
이를 관전하기 위해 북미·유럽·동남아·중동 등 지역 19개국 90여 개 업체의 바이어가 방문한다. 여기에 1:1 수출 상담회, MD 구매 상담, IR 피칭 세션 등 실질적 거래 창출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이번 행사는 산업단지 기반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촉진하는 동시에, 정부 정책과 현장 수요를 연결하는 ‘산업단지 수출 허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된다.
행사장에는 산업단지를 ‘AI 제조혁신 플랫폼’으로 전환하겠다는 비전이 제시됐다. 아울러 우리 산업단지가 글로벌 가치사슬의 중심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의지도 함께 강조됐다. 전시 사무국은 ‘산단·정책·바이어’를 직접 연결하는 포괄적 콘셉트의 수출 전문 박람회로, 산단 기업 전용 수출 플랫폼으로 도약하는 첫 단추를 끼웠다라고 첫 회 박람회를 소개했다.
‘산업단지의 날’, 대한민국 산업 60년과 미래 100년의 교차점에서

산업단지의 날은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정된 국가 기념일로, 한국 산업 발전사에서 갖는 무게감이 각별하다. 그동안 산업단지가 국가 경제 성장에 기여한 성과를 기리고, 미래 산업 전략을 모색하는 산업계 핵심 연례 행사다. 이 행사는 매년 정부·공공기관·기업·근로자 등 산업단지를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여 산업 정책의 방향성을 점검하고, 협력 의지를 공고히 하는 공론장으로 기능해왔다.
올해는 특히 의미가 크다. 국내 최초 산업단지인 구로공단 출범 61주년을 맞은 올해 산업단지의 날은 사상 처음으로 KICEF 2025와 공동 개막했다. 과거를 기념하는 행사 본연의 콘셉트와 수출 중심의 미래 전략을 하나로 잇는 교차점 역할로 열렸다.
현장에서는 산업단지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인공지능 전환(AX) 및 DX 달성, 탈탄소 혁신 등 새로운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가 이뤄졌다. 또 산업단지 기업인의 공헌을 기리는 포상과 문화행사, 정책 비전 선포가 이어지며 ‘축하·비전·연대’의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냈다.
무엇보다 공동 개막이라는 형식을 통해 산업단지의 날은 실질적인 글로벌 무대를 향한 출발점이 되었음을 선포했다. 수출과 혁신을 중심에 둔 산업단지 미래 전략을 집약하는 자리가 된 셈이다.
이상훈 KICOX 이사장은 “산업단지는 제조 총생산의 63%, 수출의 67%, 고용의 절반을 차지하며 한국 경제의 심장부 역할을 해왔다”며 그 가치를 역설했다. 이어 “AI와 데이터 기반의 AX 실증 산단, 탄소중립 및 RE100 달성 지원, ESG와 정주 여건 개선을 통해 산단을 100년을 선도할 AI 제조 혁신 플랫폼으로 개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이어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산업단지와 중견기업의 결합을 미래 성장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국내 중견기업 6000여 개 중 1800개 이상이 산업단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공급망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산단 인프라와 기업 혁신 역량이 융합되면 고부가가치 창출은 물론, 산단이 내수 거점에서 글로벌 가치사슬의 중심 무대로 도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KICEF 2025와 산업단지의 날은 전 세계 무역 경쟁 속에서 강한 대한민국 산업단지를 예고했다. 개방형 제조 생태계 구축, 산업단지 기반 대전환, 수출·혁신을 축으로 한 미래 100년 비전을 함께 천명한 것이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