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인천중학교 야구부 학생 선수들은 야구를 하지 않고 야구를 볼 때가 있다. 지도자들도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학생 선수와 부모들의 말을 자주 듣는다. 이홍민 감독(35)은 “나도 지시하기보다는 조율하는 일에 집중한다”며 “학생 선수, 코치, 부모들의 말을 많이 듣고 갈등 요소, 불만 사항 등을 잘 조정하면 팀은 잘 운영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16일 강원도 인제군 야구장에서 열린 ‘하늘내린인제 우수중학교 초청 야구 페스티벌’ 경기를 마친 뒤 젊은 감독으로서 자신이 가진 지도 철학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감독이 시켜서 하는 야구가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야구가 핵심이다.
이 감독은 “야구부 선수들이 만일 수업을 게을리하는 등 피해를 끼치면 야구를 하지 않고 한동안 지켜보게 하는 조치를 취한다”며 “동료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자신이 야구 선수로서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고 있는지도 간접적으로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또 선수들에게 입으로 지시하기보다는, 선수들이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발적 몰입을 이끌어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수들의 훈련 장면을 녹화한 뒤 보여주면 선수들 스스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있다”며 “그러면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지도 방식은 미국 하버드대 테니스 선수 출신인 티모시 골웨이가 쓴 ‘이너 게임’이라는 책에 나오는 것과 동일하다. 골웨이는 사람의 자아를 두 개로 구분한다. 하나는 외부에서 주입식으로 지시받으면서 본인은 인정하지 못하지만 무조건 해야 하는 ‘셀프 1’, 다른 하나는 자신이 확실히 잘못된 것을 스스로 깨닫고 해답을 자발적으로 찾으려는 ‘셀프 2’다. 골웨이는 잠재력(potential)에서 간섭(interference)을 제외해야만 성과(Performance)가 극대화한다는 ‘P=p-i’라는 공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감독도 선수들의 셀프 1이 아니라 셀프 2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자발적인 노력과 몰입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감독은 “이너게임이라는 책은 읽지 못했고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을 적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야구 일지를 매일 쓰게 한다. 본인이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스스로 쓰게 되면 셀프 2가 적극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그는 “선수들 스스로 일지를 쓰면서 성장하는 방식을 찾게 된다”며 “감독인 나도 일지를 보면서 선수들의 심리 상태와 고민, 감독에게 말로 하기 힘든 속마음 등을 파악해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경기 도중에는 선수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감독이 지적하면 학생들은 주눅 들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내가 말하지 않아도 본인이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기 때문에 감독이 굳이 현장에서 지적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치들에게도 가급적 경기 도중 지적은 하지 말라고, 하더라도 최소한만 하라고 주문한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부모들과도 두 달에 한 번씩 개별적으로 미팅한다. 그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개별적으로 들어보면 부모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고, 부모도 감독으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며 “출전 시간, 포지션, 타순 등에 대한 요구는 수용하지 않지만 경기·훈련 이외의 다른 것들은 부모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이어 “선수와 코치들, 코치들과 부모 간에 오해 소지가 생기면 이야기를 따로따로 듣는다”며 “양쪽 이야기를 잘 듣고 갈등을 없애면서 팀이 잘 운영되도록 조율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상인천중학교 야구부는 올해 소년체전에 인천 대표로 출전했다. 소년체전에 나간 것은 10년 만이다. 이 감독은 “팀 전력은 전국 80여 개 중학교 중 20위권”이라면서도 “그러나 선수들 기본기는 10점 만점에 9점을 줄 정도로 좋다”고 자평했다. 이 감독은 “감독은 선수들에게 방향지시등과 똑같다”며 “앞으로 고등학교에 들어가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기본기를 다지는 데 훈련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학생들의 기본기와 인성이 너무 좋아 해마다 크게 성장하고,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