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의 구속취소 청구 인용으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지난 1월 26일 구속기소 된 지 41일 만, 1월 15일 체포된 후 52일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2025.3.8/사진=뉴스1 /사진=(서울=뉴스1) 김성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되면서 조기대선을 대비해 몸풀기에 나섰던 여권 잠룡들에게도 영향이 적잖을 전망이다. 여권 잠룡들은 일제히 환영한단 입장을 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보수 유권자들에게 윤 대통령의 영향력이 커지게 된 만큼 잠룡들도 강성 지지층을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됐다. 조기대선이 열린다고 가정할 경우 '윤 대통령 활용법'이 당내 경선에서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9일 여권에 따르면 여권 내 잠룡은 일제히 법원이 윤 대통령 구속취소를 결정한 데 환영한단 입장을 밝혔다. 온도차는 있다. 친윤계 주자들은 공소취소와 탄핵 기각, 탄핵심판 변론 재개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7일 SNS(소셜미디어)에 "그동안 줄기차게 윤 대통령 구속은 불법 구속이니 구속 취소하라는 내 주장을 받아준 법원의 결정에 대해 격하게 감사드린다"며 "내란죄 수사권도 없는 공수처에서 한 수사는 모두 무효이니 공소취소부터 즉각 하라. 탄핵도 당연히 기각돼야 한다"고 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을 환영한다"고 했다. 9일엔 "우리 헌정사에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변론를 다시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28일 대구 달서구 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열린 ‘제65주년 2·28민주운동 기념식’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02.28. /사진=뉴시스 /사진=이무열
반면 12·3 비상계엄 후 탄핵 찬성 입장을 밝혔던 주자들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민주당과 공수처에 화살을 돌렸다. 오 시장은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은 매우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결과"라며 "이번 사태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민주당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고 했다.
한 전 대표는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 직후 SNS에 "그동안 심신이 많이 지치셨을 것 같다. 건강을 잘 챙기시면서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하실 수 있길 바란다"며 "혼란을 초래한 공수처는 폐지돼야 한다"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법원이 법에 따라 판결한 것을 존중하고 환영한다"고 했다.
관저로 복귀한 윤 대통령이 보수 지지층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 만큼 대다수 여권 잠룡들은 당분간 '로우키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각종 토론회와 북콘서트 등을 통해 사실상 대권행보를 이어왔으나 윤 대통령의 석방으로 제동이 불가피하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대한민국 헌정회를 찾아 정대철 헌정회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공동취재) 2025.03.07. /사진=뉴시스 /사진=
여권 잠룡들은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 전까지 대야공세에 힘을 보태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다만 한 전 대표는 10일 부산에서 당초 예정대로 '한동훈의 선택, 국민이 먼저입니다' 북콘서트를 진행하는 등 대권 행보를 이어간단 입장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한 전 대표의 경우 어차피 윤 대통령 지지층이 어차피 큰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을 의식하지 않고 행보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나머지 주자들은 핵심 지지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메시지와 행보를 로우키로 가져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어 "다음주는 윤 대통령의 시간"이라며 "잠룡들도 이 국면에 집중해서 민주당의 검찰총장 탄핵 추진 움직임 등을 때리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인용돼 조기대선이 치러질 경우 윤 대통령의 이번 석방이 당내 경선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보수 지지층 입장에선 윤 대통령 탄핵을 찬성한 후보들에 대한 반감이 더 커지고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 후보로 쏠릴 수 있단 분석도 나온다.

권성동(왼쪽)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5.03.09. /사진=뉴시스 /사진=조성우
신율 명지대 교수는 "국민들은 구속되면 죄가 있다고 생각하고 석방되면 죄가 없단 게 증명됐단 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한동훈 전 대표 등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대권주자들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다"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대통령 탄핵에 선명하게 반대 입장을 유지했던 김문수 장관이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반면 한동훈 전 대표는 책 내면서 한창 활동을 하고 있는데 탄핵을 주장했던 입장에서 최대 피해자가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조기대선을 공식화하지 않고 있던 여권은 윤 대통령 석방 후 탄핵심판 각하 가능성을 전면에 띄우며 헌법재판소 때리기에 총력전을 펼칠 전망이다. 중도층과는 더 멀어지는 것인데, 이 상황에서 결국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한다면 조기대선에서 본선 경쟁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단 분석이 나온다.
엄 소장은 "작년 12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됐을 때와 1월초 윤 대통령이 체포됐을 때, 즉 윤 대통령을 단죄할 때마다 여권 지지율이 오르고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졌다"며 "윤 대통령 석방은 반대 상황으로 보수 지지층엔 기쁜 일일지 몰라도 중도층엔 그렇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