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만든 새로운 위협의 시대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디지털 공간과 완전히 맞닿아 있다. 은행 업무, 행정 서비스, 수업과 회의까지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해결되는 시대다. 편리함의 이면에는 언제든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사이버 공격'이다.
그동안 통신, 금융, 의료 등의 해킹 사건은 단순한 보안 사고를 넘어, 기업 활동과 공공서비스를 마비시키고 국민 일상을 흔들면서 국가 사이버안보 체계 전반에 심각한 경고음을 울렸다. 사이버보안은 이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신뢰를 지탱하는 문제로 인식돼야 한다.
AI의 발전은 사이버 공격 양상마저 바꿔 놓았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기업 임원의 얼굴과 음성을 정교하게 모방하고, 가짜 화상회의를 열어 수백억원을 편취하는 사례가 해외에서 발생했다. AI는 사람의 언어습관을 학습해 본인이 직접 쓴 것처럼 위조된 이메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기존 보안 시스템으로는 탐지가 쉽지 않다. AI는 더 이상 인간을 돕는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공격자에게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이제 보안의 개념은 기존 '차단'에서 '예측과 회복'으로 전환돼야 한다. 사이버 공격을 완벽히 막을 수 없다면, 신속하게 감지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사이버보안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디지털 안전 인프라가 돼야 한다.
◇통신사 해킹 사례의 교훈
최근 주요 통신사 해킹 사건은 기업의 보안 실패에서 나아가 국민 생활과 직결된 핵심 인프라의 취약성을 드러내며, 사회·경제적으로 막대한 혼란과 피해를 초래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개인 금융정보 유출부터 기업 영업 기밀 탈취, 나아가 국가 시스템 마비에 이르기까지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다.
따라서, 디지털 강국으로서의 위상에 걸맞게 국가 차원의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보안 대응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특히, AI와 결합해 더욱 지능화되고 정교하며 자동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해킹 기술에 대비해, 현재의 보안 시스템으로는 예측 및 대응이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사이버 공격에 대한 대비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사이버보안 기술에 AI를 적극적으로 적용해 발전시키는 것이 급변하는 사이버 위협 환경에서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최선의 방안이 될 것이다.
◇AI로 방어하는 지능형 보안의 진화
양자 컴퓨팅의 발전은 기존 공개키 암호체계를 무력화할 잠재적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동시에 AI 기반의 정교하고 예측 불가능한 신종 사이버공격이 급증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기존의 사후 대응 중심 보안체계는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 최근 공격은 다단계·지능형 지속 위협(APT), 공급망 공격, 랜섬웨어 서비스화 등으로 고도화되고 있으나, 현행 보안 기술은 서명이나 규칙 기반 탐지에 의존해 미지의 위협을 실시간으로 식별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사이버보안은 AI 기반의 지능형·자율형 보안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활용한 비정상 행위 탐지와 예측적 위협 대응, 설명 가능한 AI(XAI)를 통한 보안 의사결정의 투명성 확보, 양자내성암호(Post-Quantum Cryptography) 도입 등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고 있다. 나아가 보안 자동화(SOAR)와 자율복구 기술을 결합해 공격 탐지부터 대응까지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변화하는 각종 위협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AI를 기반으로 한 지능형 보안 기술을 집중 개발하고 있는데 이를 소개해 본다.
첫째, 암호 및 데이터 보안 분야에서는 디지털 기기 전반에서 안전한 암호 운용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미래의 양자컴퓨터가 기존 암호체계를 무력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양자내성암호 기술을 최적화해 연구 중이다. 이는 오늘의 데이터를 미래에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차세대 보안 핵심기술이다.
둘째, AI 보안 분야에서는 단말기 내부에서 동작하는 '온-디바이스 AI'를 외부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 중이다. 역공학 공격을 통한 AI 모델 유출과 복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급성장하는 글로벌 온-디바이스 AI 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셋째, 영상보안 분야에서는 단순한 사후 대응을 넘어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 예측하는 예측형 영상보안(Predictive Video Security)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AI가 실시간 영상과 행동, 감정 변화를 분석해 범죄 가능성을 미리 탐지하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넷째, 네트워크 보안 분야에서는 생성형 AI를 악용한 신종 공격이 급증함에 따라, 이를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수분 내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특히 알려지지 않은 제로데이(Zero-Day) 공격에 대해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방어하는 지능형 침해대응 체계가 구축되고 있다.
다섯째, 시스템 보안 분야에서는 취약점 분석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2014년부터 초기 펌웨어 역공학 분석 기술을 통해 다수의 취약점을 발견했고, 이를 계기로 IC 칩, 인쇄회로기판(PCB) 및 소프트웨어(SW)의 숨겨진 취약점을 탐지하고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국가안전보장패 단체상을 수상하며 국내 최고 수준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향후 보안 취약점 분석 기술과 AI 기술을 결합해 분석체계의 지능화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여섯째, 국방 보안 분야에서는 AI를 활용해 사이버 공격 확산을 즉시 차단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무기체계의 SW 무결성을 검증하고, 접근 권한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제로트러스트 보안 모델'을 구현 중이다. 이는 국가 안보를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 될 것이다.
◇양자시대, 새로운 보안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디지털 사회는 암호화된 정보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등장할 양자컴퓨터는 현재의 암호 구조를 단시간에 해독할 수 있어, 기존의 RSA(Rivest-Shamir-Adleman) 암호나 타원곡선암호(Elliptic Curve Cryptography)를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미 데이터를 미리 탈취해 미래의 양자컴퓨터로 해독하는 '지금 수집, 나중 해독(Harvest Now, Decrypt Later)' 방식의 공격이 현실적인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해법이 바로 양자내성암호다. 이 기술은 양자컴퓨터의 계산 능력으로도 풀 수 없도록 설계된 차세대 암호 기술로, 세계 각국이 표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 차원의 '양자내성암호 전환 로드맵'을 수립해 미래 위협에 대비하고 있다. 양자내성암호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국민의 사생활과 기업의 경쟁력, 국가 안보를 동시에 지키는 미래 세대의 안전망이다.
◇사람을 지키는 기술, 신뢰를 세우는 보안
사이버보안과 해킹은 흔히 창과 방패의 싸움과 같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AI 사이버보안과 AI 해킹도 같은 얘기다. 즉, AI를 이용해 사이버보안을 더 철저히 할 수 있는 반면에 AI를 이용한 해킹이 존재하며, 이들은 서로 끊임없이 상대를 이기고자 할 것이다. 이것들은 선과 악의 경우와 비유된다. 세상에 어쩔 수 없이 선악이 공존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선이 악을 더 많이 이기는 역사를 만들었다.
사이버보안은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개인에게는 사생활을 지키는 방패이고, 기업에는 신뢰를 지탱하는 생명선이며, 국가에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마지막 보루다. 안전이 확보될 때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쌓일 때 행복이 가능하다. 사이버보안은 정보를 지키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기술이다. 우리가 이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할 때, 디지털 시대의 행복은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방승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scbang@etri.re.kr
〈필자〉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전자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ETRI 연구원생활을 시작해 무선전송연구부장, 미래기술연구본부장, 통신미디어연구소장 등을 역임하고 2022년 말 원장에 취임했다. 그동안 디지털신호처리, 이동통신 등 분야에서 SCI급 논문을 다수 발표하고 1400건 가까운 국내외 특허출원, 721건 특허 등록 실적을 거뒀다. 2006년 국무총리 표창, 2014년 한국공학상, 2021년 해동기술대상을 받았다. 지난해는 통신 강국 발전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웅비장을 받았고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에 선정됐다. 2023년 제19대 대덕연구개발특구기관장협의회(연기협) 회장으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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