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람한 녹용에 흐뭇해야 하는데…울퉁불퉁 자란 ‘산불’ 상처”

2025-05-01

“5월말 절각철을 앞두고 쑥쑥 자라나는 녹용을 보며 흐뭇해야 할 때인데 산불 이후로 마음이 아프네요.”

4월29일 경북 안동시 임하면에서 만난 한영국 한진농원 대표(44)는 뿔이 군데군데 상처 난 ‘엘크’ 사슴 몇마리를 쓰다듬으며 이같이 말했다.

대형 산불이 영남지역을 휩쓴 지 한달이 넘었지만 사슴농가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사슴협회에 따르면 안동에서만 사슴농가 3곳에서 창고·농기계·축사가 전소됐고 사슴 50여마리가 폐사하는 피해를 봤다. 사슴이 매연을 들이마시면서 건강이 나빠지는 등 간접 피해를 본 농가는 경북 전체 가운데 7곳으로 파악됐다.

한 대표는 “산불은 3월25일 오후 4시께 우리 농장 근처까지 확산했다”면서 “사슴들이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도록 축사 밖으로 풀어주려 했지만 불길이 들이닥치면서 100마리 중 3마리만 겨우 놔주고는 피신해야 했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다음날(26일) 다시 찾은 농장 입구엔 풀어준 사슴 2마리가 죽어 있었고, 다른 1마리는 시력을 잃고 피부 화상을 입은 채 농장 앞 물가에 고꾸라져 있었다는 게 한 대표의 설명이다.

한 대표는 35마리가 폐사했고 축사 2동, 지게차 1대가 몽땅 불타면서 피해액은 4억원 남짓으로 추산했다. 그는 “지난해 목돈을 들여 신규 입식한 사슴이 녹용 한번 겨우 잘라보고 죽었다”고 발을 굴렀다. 이어 지난해 7월 ‘제32회 전국 우수사슴 선발대회’에서 최우수상(농협중앙회장상)을 받은 사슴을 가리키면서 “산불 때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녹용이 울퉁불퉁하게 기형으로 자란다”고 안타까워했다.

경북도에 따르면 가축 신규 입식비 1마리당 기준단가는 한우는 182만7000원, 사슴은 ‘엘크’ 133만1000원, ‘레드디어’ 44만5000원이다. 복정석 경북도 축산정책과장은 “행정안전부, 경북도, 해당 시·군이 기준단가의 35%, 7.5%, 7.5%를 각각 보조하고, 농협을 통해 30%를 융자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20%는 농가 자부담분이다. 한 대표는 “좋은 사슴은 마리당 수천만원씩 하는데, 턱없이 적은 금액”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마저도 가축을 신규 입식할 때나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희망의 메시지도 전했다. 그는 “죽을 고비에서도 살아남은 사슴을 보며 낙담하긴 이르다는 생각에 사비를 털어 축사 보수를 거의 마쳤다”면서 “하루빨리 사슴 사육을 재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동=이미쁨 기자 already@nongmin.com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