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관치료 환자는 줄고 임플란트 환자는 늘어나는 치과 진료의 기형화가 가속되는 가운데 근관치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현 건보 체계의 개편이 절실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대한치과근관치료학회는 춘계학술대회 특별 세션으로 ‘근관치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고찰-국민건강보험 체계 중심으로’를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좌담회에는 강호덕 원장(방배본치과), 설유석 치협 보험이사, 황성연 원장(목동사람사랑치과), 김미리 서울아산병원 교수(치과보존과)가 패널로 참석한 가운데 근관치료의 현황과 문제점, 향후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현장에서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근관치료 환자 수는 최근 4년 새 395만 명에서 353만 명으로 11%가 감소한 반면, 65세 이상 임플란트 환자 수는 40만 명에서 56만 명으로 41% 급증했다.
이날 함께 발표된 스트라우만 보고서에도 한국은 ‘뽑고 심는’ 진료가 대세인 현실이 드러났다. 한국은 임플란트 총 식립 건수가 300만 건을 넘어섰고, 인구 1만 명당 임플란트 식립 건수는 약 700건으로 세계 1위다. 스페인(1만 명당 300건), 독일(1만 명당 200건)과 비교해도 압도적 수치다. 임플란트 시술이 가능한 치과의사 비율 역시 한국은 80%로 북미(22%), 중국(11%)과 비교해 큰 차이를 보였다.
황성연 원장은 “임플란트가 지나치게 보편화되면서 환자들도 자연치아를 살리려는 시도 없이 임플란트로 넘어가는 경우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패널들은 이 같은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현 건보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근관치료가 진료 난이도와 시술 시간이 높은 반면, 상대가치점수 체계에서는 저평가된 채 유지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후발 항목과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현미경, MTA, Ni-Ti 파일 등 현대적 시술법이 임상에 널리 자리 잡았음에도 건보 체계는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미리 교수는 “현재 근관치료 급여의 원가 보전율은 약 66%에 불과하다”며 “저수가 구조가 지속된다면 발치와 임플란트 선택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강호덕 원장은 “처음 설정된 상대가치점수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수정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오히려 고착화되면서 현실과 더 동떨어진 체계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패널들은 연령별·단계별 치과 치료 목표를 설정하고, 각 학회가 근거 데이터를 지속 축적해 정책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또 상대가치점수 재조정을 위한 학회간 협력, 시술법의 현대화를 통한 신의료기술 재정립, 정부·국회와의 끊임없는 대화 채널 구축, 대국민 홍보 확대 등도 필수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정부가 중증·응급·필수의료 강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치과계도 근관치료의 필수성을 명확히 입증하고 정책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설유석 치협 보험이사는 “치협은 치과 전체의 파이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학문적 문제가 정책으로 넘어갈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치과의사가 아닌 국민의 이익이다. 정부를 설득할 때 우리의 주장을 어떻게 국민 이익에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