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육아의 상당 부분이 기저귀·분유·병원비 등에 돈을 쓰는 ‘지출’로 해석됐습니다. 하지만 요즘 MZ세대(20대~40대 초반) 부모는 다릅니다. 아이 키우는 과정을 ‘콘텐트’로 만들고, 경험 자체를 소비하죠. SNS에 올릴 장면을 기획하고, 부모 본인도 즐길 수 있는 선택을 합니다.
올해 합계 출산율(가임 기간 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9명. 낮은 수치에 비해 국내 키즈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습니다. 연말 기준 437억6000만 달러(약 60조 원)로, 2012년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할 전망입니다(글로벌 금융데이터 서비스 피치북). 업계는 이 엇갈린 추세를 ‘새로운 부모 세대의 달라진 육아 관점’에서 찾습니다. 오늘 비크닉은 키즈 시장의 변화를 들여다봅니다.
MZ식 육아는 ‘찍고 남기는’ 콘텐트
“MZ세대는 SNS에 올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비가 자극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된 뒤에도 이들 세대의 핵심 욕구는 ‘경험+공유’죠. 게다가 과거처럼 입소문이 동네 단위로 퍼지는 게 아니라, SNS를 타고 전국으로 확산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육아그램 게시물은 680만 건, #육아기록은 710만 건을 넘습니다. 젠더리빌 파티(Gender Reveal Party, 아기의 성별 공개 행사)나 돌잔치 같은 생애 이벤트는 물론, 사소한 일상까지 업로드 대상이 되고, 그 과정에서 제품 추천과 후기 공유가 이어지며 새로운 소비가 촉발됩니다.

비크닉이 롯데멤버스 리서치 플랫폼 라임과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육아 경험을 SNS에 공유해봤다고 답한 2030 부모 364명 중, ‘SNS에서 본 다른 부모 경험담이 구매에 영향을 준다’는 응답은 20대 57.5%, 30대 49.7%였습니다. ‘영향받지 않는다’는 응답은 각각 5%, 9%에 불과했죠. 소비 기준도 실용성·가격·안전성뿐 아니라 부모의 취향, 브랜드 가치, 경험 연출 목적까지 고르게 꼽혔습니다. 실리와 감성, 경험이 동시에 고려되는 시장이라는 얘기입니다.
새로운 부모 세대는 개인만이 아니라 업체가 주도하는 SNS 기반 체험형 서포터즈 활동에도 적극적입니다. 이랜드월드의 육아 플랫폼 ‘키디키디(kidikidi)’가 운영하는 ‘키디크루’에는 매 시즌 7000명 가까이 몰려 경쟁률이 100대 1을 웃도는데요. 선정된 부모는 1500여 개 브랜드 신상품을 먼저 체험하고, 자녀 착장을 직접 스타일링해 SNS에 공유합니다. 단순히 상품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취향을 드러내고 부모 커뮤니티와 연결되는 ‘네트워크형 소비’로 진화한 겁니다.

키디크루로 활동 중인 육아 인플루언서 이채윤(가명·37)씨는 “아이 발달 과정이나 첫 외출·여행 같은 기념일은 꼭 예쁘게 남기고 싶다”며 “그럴 때 옷을 새로 사거나 가족 시밀러룩을 맞추면서 소비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말했습니다. 또 “인스타그램에서 본 부모 경험담을 DM으로 확인하고 그대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어요. 결국 소통이 곧 소비로 이어지는 구조인 셈입니다.
왜 하필 MZ가 판을 바꿨나

이런 시장 변화의 본질은 세대교체입니다. 1990년대 초반 태어난 ‘2차 에코붐 세대’가 30대에 접어들며 출산 주력층으로 진입했죠.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4월~6월) 출생아 수는 6만97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 늘어나 1981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 증가폭(+7.3%)을 기록했습니다.
부모가 된 이들은 외동 중심의 ‘골드키즈’를 선호합니다. 희소하고 귀한 자녀이다보니 조부모·이모·삼촌까지 지갑을 여는 ‘텐포켓’ 가족 구조도 만들어지죠. 중국의 소황제(小皇帝·외동 아이가 가족의 유일한 관심사) 문화와 닮았지만, 한국은 SNS 공유 문화와 ‘발견형 소비’가 결합해 키즈 산업을 사실상 ‘콘텐트 산업’으로 끌어올린 것이 특징입니다.

또 MZ 부모들은 스마트폰 세대답게 ‘검색 후 최저가’보다는 콘텐트 속에서 우연히 발견→구매로 이어지는 흐름에 익숙합니다. 이 때문에 브랜드들도 인플루언서 협업과 특화 콘텐트 제작에 힘을 싣는 분위기죠. CJ온스타일이 2022년 시작한 유아동 전용 라방 ‘맘만하니’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평일 오전 10시, 이른바 ‘육아 골든타임’을 공략해 상담형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고, 기저귀·유아동복 같은 필수템부터 카시트·교재교구 같은 프리미엄 제품까지 첫해 대비 주문금액이 2.5배 늘었습니다.
여기에 만혼화 흐름도 맞물렸습니다. 첫째 아이 산모 평균 연령은 32.96세까지 높아졌고, 부부가 일정한 경제력을 갖춘 뒤 출산하는 경우가 늘면서 프리미엄 소비 성향이 강화됐습니다(삼정KPMG 보고서). “한 명에게 집중하는 질적 투자가 시장을 키우며 과거엔 없던 세분된 시장이 새로 생겼다”(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 교수), “저출생 지원금과 기업 복지가 아이 명목 지출을 늘리고, 프리미엄 수요로 이어졌는데 이는 좋은 상품을 추구하는 MZ세대 특성과 맞물린 결과”(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 교수) 등의 전문가 분석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커머스·패션·키즈테크가 동시에 커진다

MZ 부모들의 소비 패턴은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패션인데요, 글로벌 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유·아동복 시장은 2조5390억 원 규모로, 2020년 대비 38% 증가했습니다. ‘2025년 봄 시즌 패션 소비 실태조사’ 결과 전체 패션 시장이 8% 줄어든 것과도 대비되죠(한국섬유산업연합회).

특이한 건 과거 같은 백화점 브랜드가 아니라, 인스타그램에서 입소문을 타는 브랜드가 성장한다는 점입니다. SNS를 통해 개성 있는 디자인과 스토리텔링으로 승부해 부모들의 ‘취향 소비’를 자극한 거죠. 키즈 패션이 확대하면서 주요 플랫폼 내 버티컬 커머스도 불이 붙었습니다. W컨셉은 올해 상반기 키즈 카테고리 매출이 전년 대비 10% 늘었고, 영아 라인은 품목별로 최대 30배 성장했습니다. 29CM 역시 베이비·키즈 셀렉션을 강화한 결과, 같은 기간 거래액이 전년 대비 929% 급증했습니다.
IT와 결합한 교육 콘텐트도 키즈 커머스의 또 다른 성장 축입니다. 이은희 교수는 “한국 부모들은 ‘공부와 연결되는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본다”며 “젊은 부모는 기술력에 대한 눈높이가 높고, 놀이·학습·발달·또래 관계까지 미래 교육과 연동되니 키즈테크에 관심이 쏠린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이보다 내가 더 즐겁다” 취향이 된 육아

앞으로 키즈 시장은 저출생 사회일수록 한 아이에게 더 쓰는 구조가 강화되고, 육아는 ‘생존 비용’에서 ‘경험·콘텐트 소비’로 전환될 전망입니다. 키즈 업계 관계자들 역시 “한정판 유아템은 아이 선물 같지만 사실은 부모의 수집품이 된다” “내 취향에 맞는 육아용품이 일상을 버티게 한다”는 말을 공통으로 전합니다.
일례로 지난 8월 성수동에 문을 연 ‘이구키즈 성수(29CM KIDS Seongsu)’는 이런 흐름을 정조준했습니다. 부모와 아이의 취향을 동시에 큐레이션 한다는 콘셉트 아래 패션·잡화·가구·교구 등 300여 종의 키즈 아이템과 놀이 공간을 배치했죠. 이영애 교수는 “ 아이에게 부모의 체험 욕망이 반영돼 시장이 커지는 것”이라며 “반려동물 시장처럼 더 세분화·맞춤화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결국 부모가 즐거워야 지갑이 열립니다. ‘아이를 위한 소비를 어떻게 부모의 경험으로 설계하느냐’가 키즈 시장의 다음 경쟁력으로 떠오를 날이 머지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