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주인공인 아시타카는 난관에 처했을 때, 나이 많은 점술가를 찾아간다. 옛날에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노인에게서 지혜를 구했다. 그들은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젊은이들에게 현명한 조언을 건네는 존경받는 존재였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노인의 지위는 빠르게 하락했다. 우리는 노인에게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어졌는데, 그들은 더 이상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지고 굼뜬 노동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인공지능(AI)에게 질문하고, 노인은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전락했다. 할머니들은 거리에서 전단지를 뿌리거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티슈를 제공하는 단순한 업무를 수행한다. 이번 달에 세 번쯤 택시를 탔는데, 매번 할아버지 기사님이 운전대를 잡고 계셨다. 되도록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퇴직 후에도 쉬지 못하는 한국 노동자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지난주에 ‘레이디’라는 이름의 말이 도로에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레이디는 뉴욕에서 관광용 마차를 끌던 말이었다. ‘라이더’라는 이름의 말이 3년 전 같은 이유로 목숨을 잃은 장소였다. 도로에서 용변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사료와 물을 제대로 먹이지 않고, 체력과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고강도의 노동을 강행하다 일어난 참변이다.
이것이 단지 말에게만 일어나는 일일까? 나는 더 빨리 일을 마치기 위해 끼니를 거르거나 오줌을 참고 일한 적이 있다. 과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병에 걸린 적이 있다. 일하는 기계 취급을 받고 서러워 운 적 있다.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해 허술한 식사로 끼니를 때운 적 있다. 평생 이렇게 일만 하다 죽는 건 아닌가 무서울 때가 있다.
레이디의 삶을 상상해본다. 무거운 마차를 끌며 견디기 어려운 소음과 조명 속에서 일하다 길바닥에 쓰러져서야 비로소 쉴 수 있었던, 노동하는 말. 레이디는 노인이어서 죽었다. 레이디는 동물이어서 죽었다. 레이디는 노동자여서 죽었다. 레이디는 상품이어서 죽었다. 레이디는 기계여서 죽었다. 인간은 레이디를 다섯 번이나 죽였다.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는 인간처럼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원숭이 피터가 등장한다. 피터가 묻는다. 동물들을 어디까지 인간처럼 만들 셈이냐고. 그러는 인간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풍요와 편리로 구원받은 게 맞느냐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하다 죽는 일은 비단 레이디만 처한 상황이 아니다. 관광 마차를 끄는 말들이 처한 특별한 불행이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못하고, 살아 있는 내내 일만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처한 공통의 비극이다. 레이디는 말이라서 죽은 게 아니다. 인간이어서 죽었다. 인간이라서, 노동자라서 죽었다.
레이디는 나다. 나는 레이디다. 우리는 같은 노동자다. 레이디와 나는, 2025년 여름, 노동에 혹사당해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는 ‘같은 존재’다. 레이디는 마차를 끌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나도, 당신도 그렇다. 온종일 숨 가쁘게 일만 하는 레이디들에게, 나에게, 당신에게, 쉴 틈은 죽어서야 온다. 우리는 죽어서야 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