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작지만 알찬 ‘잣’…두부로 담백하고 고소한 맛 두배 선사

2024-10-24

잣은 ‘신선의 식재료’로 불릴 만큼 영양성분이 풍부하고 고소한 맛이 뛰어나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경기 가평은 산지의 30% 이상이 잣나무로 이뤄져 가히 잣의 고장으로 칭할 만하다. 가평에선 잣을 감질나게 고명으로만 쓰지 않는다. 품질 좋은 잣을 한가득 넣어 다양한 요리를 만들고 있다. 이맘때 두부에 잣이 들어간 ‘잣두부’는 가을철 등산객의 입맛을 당긴다.

잣은 소나무과 식물인 잣나무에서 나는 씨앗이다. 잣나무는 한국 고유 수종으로 영어로는 코리안 파인(Korean Pine)이다. 잣나무는 영하 50℃까지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추위에 강하다. 주변 지역보다 평균기온이 낮고 고도가 높은 가평이 잣나무 재배 최적지인 이유다. 잣은 오랜 기다림의 산물이다. 잣나무는 수령이 20년 넘어야 꼭대기에 잣송이가 맺히며, 30∼50년은 돼야 본격적으로 잣을 수확할 수 있다. 잣은 2년에 걸쳐 여문다. 5월에 꽃이 피고 8월에 어린 잣송이가 열린 후 먹을 수 있는 크기로 자라기까지 1년, 붉은 갈색 열매로 익기까지 또 1년이 걸린다. 잣송이를 수확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잘 익은 잣송이는 9∼11월에 사람이 직접 채취한다. 아주 뾰족하고 단단한 쇠가 박힌 신발을 신고 20∼30m 높이까지 나무에 올라가 갈고리가 달린 긴 장대로 딴다. 잣송이를 건조한 뒤 탈탈 털면 100여알 정도의 단단한 갈색 피잣이 나온다. 이 피잣을 까면 그 안에 우리가 흔히 아는 뽀얗고 매끄러운 잣 알맹이를 볼 수 있다. 이는 현미처럼 껍질이 얇게 붙어 있는 ‘황잣’과 그 껍질마저 벗겨낸 ‘백잣’으로 구분된다.

고영양 견과류인 잣은 임금님 진상품으로도 올랐다. 조선 의학서 ‘동의보감’에는 “잣을 꾸준히 먹으면 몸이 여윈 것을 치료하여 살찌고 건강하게 한다. 잣으로 죽을 쑤어 늘 먹으면 좋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로 잣엔 단백질·비타민·철분이 풍부하고 지방 함량이 60% 이상 차지한다. 이 지방은 올레산·리놀레산 같은 불포화지방산으로, 피부를 매끄럽게 하고 체력 회복을 도우며 혈액 속 콜레스테롤을 줄여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가평에서 맛볼 수 있는 잣 요리는 잣국수·잣칼국수·잣죽·잣묵·잣곰탕·잣막걸리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 가운데 콩과 잣을 섞어 고소함이 두배가 되는 잣두부는 요즘 같은 쌀쌀한 날씨에 생각나는 음식이다. 최근 인기를 끈 넷플릭스 콘텐츠 ‘흑백요리사’에선 출연자 에드워드 리 셰프가 ‘잣 아보카도 두부 수프’를 선보였다. 심사위원을 맡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콩과 잣은 서로 잘 어울리는 식재료”라고 평가하며 잣과 두부의 조합이 주목받았다.

잣나무가 빽빽한 축령산 자락엔 잣 공장이 많은데, 이곳에서 가져온 잣으로 잣부두를 만들어 파는 식당이 눈에 띈다. 식당 ‘송원’은 입소문 난 잣두부 맛집이다. 8년째 이 식당을 운영하는 이성구 사장은 “잣두부를 만들 때 잣을 너무 많이 넣으면 두부 형성이 안된다”며 “잣향이 잘 느껴질 수 있도록 잣과 콩의 적정 비율을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잣두부는 콩과 잣을 섞어 만든다. 잣을 갈아 넣기도 하고, 두부가 굳기 전 통잣을 뿌려 잣향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잣두부는 잣기름 때문에 소비기한이 3일 이내로 짧다.

잣두부 한상이 나왔다. 잣모두부·잣두부버섯전골·잣순두부와 함께 각종 나물과 보리밥·강된장이 차려진다. 네모반듯한 모두부에 잣이 통째로 콕콕 박혀 있다. 잣모두부를 간장에 콕 찍어 베어 문다. 콩만 들어간 두부보다 부드러운 식감이다. 처음엔 구수한 콩맛만 나더니 이내 특유의 잣향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중간마다 통잣이 씹히며 그 향과 고소함이 더욱 강해진다. 후루룩 넘어가 속이 편안한 잣순두부, 얼큰한 국물이 부드럽게 마무리되는 잣두부버섯전골도 맛본다. 씹으면 씹을수록 잣향이 깊게 느껴지는 게 잣두부의 매력이다.

일교차가 커지고 있다. 환절기를 대비한 건강식을 찾고 있다면 담백한 잣두부로 부담 없는 포만감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가평=김보경 기자 bright@nongmi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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